[칼럼] 조국의 시간 그 후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조국의 시간이 끝났다. 누군가는 이제 국회의 시간이라고 한다. 개중에는 윤석렬의 시간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문제들이 조국의 시간 동안 우리 앞에 전면화 되었다. 교육 불평등, 정치검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기저에서 작동되고 있는 계층과 계급 고착화 문제. 이 문제들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우리사회 발전의 속도와 범위,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현실정치는 어차피 선택과 배제의 연속이다. 정치란 생물 같은 역동성이 있어 소수 몇 사람의 각본을 비틀기도 하고 문서 속 계획을 뛰어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승리한 듯하나 그 안에 후퇴나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하고 패배한 듯하나 후일 승리의 씨앗이 심어지기도 한다.
집권여당이나 조국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검찰개혁에 대한 고집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의지는 온갖 비판과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정치개혁과제 일순위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만들었다. 11시간 압수수색과 먼지 털이 식 수사가 모든 이들에게 정치검찰의 민낯을 속속들이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버텼기 때문에 잃은 것도 많지만 그가 버티지 않았으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각성이 이처럼 강력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선거법 개정과 검찰개혁을 다루는 패스트트랙은 여의도 정치꾼들끼리만 주무를 수는 없게 되었다. 지난 두 달의 사태가 뒷짐 지고 지켜만 보던 주권자들을 정치의 한가운데로 불러내고 있다. 국회의 시간도 윤석렬의 시간도 아닌 국민의 시간이 다시 열리고 있다.
그런데 검찰개혁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교육개혁 과제는 흐릿해지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검찰은 검찰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는 잘 만들어진 학습 다큐를 스스로 생산해 생중계한 셈이다. 덕분에 검찰과잉수사가 유발한 분노게이지가 급상승했다. 이에 비해 불평등교육에 대한 분노게이지는 조국 지키기와 검찰개혁이 하나의 구호로 묶이면서 제 자리를 명확하게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
조국이 누린 입시특혜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딜레마적 상황이 빚어낸 혼란이다. 누군가는 단계적 개혁론, 개혁의 우선순위라는 논리로 이런 상황을 당연한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이런 정치공학적 분석도 가능하다 싶지만 아쉬움과 답답함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조국의 시간 초반에 강력한 쟁점이었던 교육개혁문제가 초점을 잃은 채 흐지부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은 촘촘하게 짜여진 거대한 구조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나 그 구조 안에서 그 구조를 움직이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 하나하나들이다. 그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제도다. 그러니 조국의 시간을 거친 우리는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가진 이들 자녀에게 유리한 입시제도만을 문제 삼는 것에서 나아가 공교육이 민주주의자를 제대로 길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지수를 높일 수 있음은 물론 민주시민인 검찰, 민주시민인 국회의원, 민주시민인 기자, 민주시민인 장관들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국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교육개혁 과제다. 그래서 조국의 시간이 끝난 지금 우리들이 풀어야 할 문제는 단지 입시제도 일부를 손보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교육제도는 교육받을 기회에서 심각한 불평등을 안고 있다. 특성화고, 일반고, 자사고, 외고, 과고, 영재고 식의 학교서열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점수와 성적 중심의 공식·비공식 배제 문화 역시 엄존하고 있다. 교육에서 평등을 얘기할 때 우리는 기회의 평등 뿐 아니라 과정의 평등도 함께 얘기해야 한다. 절차상의 공정성만으로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릴 특권이 사라져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회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교육에서의 평등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위해서나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나 모두 중요한 문제다. 학교 안에서의 차별 없는 교육은 학교 밖 차별을 완화하는 토대가 된다. 과정과 기회에서 차별 없는 교육만이 모두가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발현시키고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독점에 의한 차별과 배제는 우리사회 역량과 에너지 총합을 극도로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손해다.
조국 사태로 우리는 적극적 불법이나 탈법이 아니어도 차별과 배제가 용인되는 교육시스템 문제를 확인했다. 지금은 검찰개혁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개혁된 검찰 시스템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도 교육개혁이 중요하다. ‘검찰개혁은 조국이어야 한다’는 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그 말 속에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작동시킬 사람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특정한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검찰개혁 적임자들이 나올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의 반 이상은 교육의 몫이다. 그러니 검찰개혁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제도와 시스템 차원의 검찰개혁도 사법개혁도 언론개혁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제도와 시스템에 생명을 불어넣을 사람을 길러내는 일, 그 개혁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일은 교육개혁 없이 불가능하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그리고 서초동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