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교사와 청소년의 정치배제 극복과 보이텔스바흐 원칙 / 곽노현 징검다리 이사장
요즘 나는 교사와 공무원, 16세 이상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해야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혀있다. 동시에 내게는 강렬한 꿈이 하나 생겼다. 청소년의 투표연령을 낮추고 공무원과 교사의 업무시간 밖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입법을 쟁취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영토를 확장하는 꿈이 그것이다. 현재 공무원과 교사는 투표권만 있을 뿐 더 이상의 정치활동을 할 권리가 없다. 무려 150만 명이나 되는 탄탄한 직업을 가진 1등 시민들이 정당과 선거 등 정치영역에서 배제된 2등 시민의 지위를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60만 명이 넘는 18세 시민들도 OECD국가 중에선 유일하게,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유권자로 편입되지 못한 상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전제 아래 나는 2017년 대선부터는 관련법을 개정하여 18세 아이들의 투표권 행사가 보장받는 꿈을 꾼다. 늦어도 2018년 지방선거부터는 공무원과 교사들의 정당 활동과 선거운동도 보장받는 꿈을 꾼다. 특별히 교육감선거에선 투표연령을 더 낮춰 16세 이상 학생들이면 누구든지 투표권을 행사하는 꿈을 꾼다. 나아가서 대부분의 EU 국가들처럼 15살이면 누구나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꿈을 꾼다. 나는 이와 같은 정치기본권 확대 조치들이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에 건강성과 진취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이면서도 돈이 들지 않는 처방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의 19금 정치를 18금 정치로 바꿀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은 이미 무르익었다. 무엇보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나섰다. 지난 8월 18세 법안이 국회에 공식 제출된 상태다. 지난 6월에는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8월 4일에는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각각 18세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박주민 의원 입법안에선 교육감 선거권 연령을 19세에서 16세로 대폭 하향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도 교육감선거연령을 16세로 내리자고 공식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의 경우 18세 선거법안은 당론차원으로 추진된다.
여소야대 20대 국회에서 야3당이 일제히 법 개정을 공언하기 때문에 입법 환경은 어느 때보다 좋다. 야3당에게는 18세 선거법안을 최우선 공조입법의 하나로 올려놓음으로써 단호한 입법의지를 보여주는 일이 남아있다. 물론 이렇게 해도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대의 걸림돌은 새누리당의 반대다. 국회다수당 시절 새누리당은 선거연령 인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없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내년의 대선 셈법 상 18세 투표권에 반대당론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과반수로는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만든 국회선진화법도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 선거연령 인하 여부를 공론장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게 하는 일이다. 여론의 관심 사안이 되면 반대 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게 어려워진다. 나아가서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들한테 책임 있는 입장표명을 요구할 수 있다. 반기문, 유승민, 남경필 등 누구라도 선거연령 1살 인하를 내놓고 반대하는 게 쉽진 않을 것이다. 자연스레 기존당론에 틈새가 생길 때 새누리당의 개혁파의원 10명의 동조만 이끌어내면 국회선진화법을 가볍게 넘어서며 입법에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두려워할 게 못 된다.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 너무나 반동적이라 코앞의 대선에서 정치적 부메랑을 맞게 돼있기 때문이다.
논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권 말기의 보수일색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이미 선거연령 하향조정이 바람직하다는 공식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했겠는가. 2013년 2월, 국가인권위는 선거연령 인하 논리를 4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선거권 확대는 민주주의의 기본요청이다, 둘째, 우리 법 체계상 18세면 성인취급을 받는다, 셋째, 여섯 나라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18세 혹은 그 이하로 선거연령을 정해놓고 있다, 넷째,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뒤에서 보듯이 국가인권위가 제시한 논거들은 설득력이 워낙 강해서 합리적 반박이 정말 어렵다. 너무나 일방적으로 기울기 때문에 백분토론 같은 것도 어려울 정도다.
국가인권위가 제시한 비교입법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232개국 중 무려 215개국(92.7%)이 18세나 그 이하 연령을 선거연령으로 정하고 있다. 선거연령을 16세로 정한 나라도 오스트리아 등 6개국이나 된다. OECD 34개 회원국들의 선거연령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모두 18세 또는 그 이하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에선 더 낮추자는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일례로 아르헨티나는 2013년부터 18세에서 16세로 낮췄다. 세계적으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조정하는 추세가 지속되는 이유는 민주시민이나 민주정치의 관점에서 참정권 확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선거연령은 18세로 유지하면서도 지방선거연령을 16세로 낮춘 나라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 소관사항인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취지다. 대표적인 예로는 뉴질랜드, 스위스, 독일의 일부 주(니더작센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브레멘주)를 꼽을 수 있다. 혼인 시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투표가 가능하거나(도미니카, 인도네시아), 고용된 경우에는 16세부터 투표를 허용하는 나라(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도 있다. 어떻게든 구체적 형평성을 도모해서 참정권 제약을 최소화하려는 이런 입법례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일도양단적인 19세 선거연령제한법은 참정권 제약을 가볍게 여기는 반민주적 입법례가 아닐 수 없다.
19금 선거법은 법체계적으로도 안 맞는다. 우리나라의 법질서는 18살부터는 책임 있는 성인이자 시민으로 대접해준다. 병역법상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도,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이 될 수 있는 나이도 18살이다. 근로기준법상 유해, 위험한 사업에도 18살이면 종사할 수 있고 야간근로와 휴일근로, 갱내근로도 가능하다.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 제한도 18살이면 풀린다. 혼인도, 운전면허도 18살이면 가능하다. 한마디로, 우리 법질서는 18살부터 “국가와 사회의 형성에 적극 참여”시킨다. 18살이 되면 공무도 담당하고 전사도 가능한데 19살이 돼야 투표를 할 수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한국의 법체계는 18금 선거법을 지지한다.
국가인권위는 학생의 교육감 선거참여에 대해서 더 진취적으로 생각할 것을 국회의장에게 권한다. 좀 길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학생은) 학교운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항을 관장하는 교육감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어떤 집단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이들의 이해와 의견을 반영하는 정책이 수립되어 온 사실을 고려할 때, 교육정책 등의 영향을 받는 청소년 당사자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된다면 선거과정에서부터 교육현장의 수요와 의사가 반영된 공약과 정책이 마련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청소년도 국가의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참여경험은 청소년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제49조 제1항의 교육감선거권 연령기준의 하향을 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교육감선거연령을 일반선거연령보다 더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몇 살로 정하면 좋을까? 주민등록법은 17살부터 주민등록을 의무화한다. 독립된 주민으로서 공적 지위를 17살부터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육감선거 등 지방자치 선거권을 17살부터 주는 것이 법체계상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북한이 선거연령을 17살로 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교육감선거연령만큼은 최소한 17살로 낮추면 어떨까. 물론 더 과감하게 16살로 낮춰서 고등학생한테는 교육감선거권을 부여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 활동을 하는 편이 교육적으로나, 민주정치를 위해서나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이것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할만한 가치가 있다.
“「정당법」 제22조 제1항에 따라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은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19세 이상의 국민에게 있다. 그런데 정당이라는 시민의 자유로운 결사체의 구성원 자격은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개방되는 것이 민주주의원칙에 부합한다 할 것이다. 정당가입 개방에 대한 제한은 당원의 자격에 대한 정당내부의 교육이나 통제시스템에 따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당가입연령은 선거권연령보다는 좀 더 넓혀서 국민의 정당가입 및 정치참여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정당가입연령을 선거권연령에 연동해놓은 현행법의 대안으로 정당가입연령을 선거권연령보다 더 낮춰 독자적으로 규율할 것을 제안한다. 현대 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이상 정당은 시민들에게 개방적이고 친근할수록 좋다. 정치선진국에선 중고교 학생회장선거 때 후보들이 지지정당을 밝히는 것이 불문율이다. 정당에도 중고생 담당부서가 따로 있을 만큼 정당과 교육이 친하다. 실제로 자아와 가정, 동네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와 국가, 인류공동체에 눈뜬 학생들에게 정당은 언론만큼이나 훌륭한 배움터다. 세상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선거연령 미달이라는 이유로 정당의 문을 닫아거는 것은 교육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선거연령 하향을 반대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유였던, ‘고등학생을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학생의 정치화 문제나 대입준비 등을 고려할 때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확고한 논거를 내세워 배척한다. “19세 미만자 모두가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며, 선거 관련 정보를 얻고 투표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학업에 지장을 줄만큼 많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교육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국가의 발전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할 때 위와 같은 우려는 교육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가. 실로 탄탄한 논거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여론을 일깨우지 않으면 새누리당의 대선득표 당리당략과 보수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이 제도정치권에서 통할 가능성이 높다. 야3당의 공조만으로는 여론전을 조직하고 상황을 돌파하는 데 역부족이다. 여기에서 진보교육감의 역할이 요청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교사가 정치기본권을, 고등학생이 교육감선거권을 제약받는 현실은 교육감들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책임과 관할인 교사와 학생들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제대로 시민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써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들은 선거연령 하향조정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확보를 자신의 교육적, 정치적 책임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먼저 교육감협의회를 움직여 중앙선관위의 18세 선거연령 방침을 공식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학부모와 교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교육과 연수를 실시하는 것으로 의지를 가시화하면 좋을 것이다. 나아가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원탁토론의 장으로 초대해서 이성적 숙의의 바탕 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주도할 수 있다. 학부모와 일반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교사와 고등학생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세울 경우 기대되는 교육적, 민주주의적 효과를 역설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보교육감들이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18세(교육감선거는 16세)이상의 ‘교복 입은 시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려면 거기에 맞는 교육적 준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교육과정을 통해 합리적 투표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그러려면 그때그때 선거권 행사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사회현안과 교육현안을 최대한 균형 있게 학교수업에서 다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다양한 정치현안을 수업시간에 교육적으로 다루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현안을 다룰 때 교사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교육원칙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참고할만한 것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이다. 첫째, 교사는 정치현안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주입, 교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 둘째, 교사는 논쟁적 현안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의 주체가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교실수업에서 다룰 때 반드시 그 논쟁지형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정치현안 수업시간에 교사의 부당한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보이텔스바흐 원칙 등 안전장치를 갖춘 경우 교사에 대한 지금의 정치 참여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교사집단은 일등 시민이 될 자격을 두루 갖췄다. 학력도 균질적으로 높고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이며 준법정신과 책임감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정당활동과 선거운동을 금지당하고 있으며 먼저 사직하지 않고는 본선은커녕 경선출마도 불가능하다. 공무원 100만 명도 교사와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거세돼왔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150만이나 되는 일등시민을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 및 시민 지형은 일차적으로 공무원 100만 명과 교사 50만 명을 빼놓고 작동된다.
뿐만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직원들에게도 정치활동은 일종의 금기나 진배없다. 우리나라의 보수편향 정치구도에서 만약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활동을 내놓고 하다가는 위험인물로 찍혀 사용자의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중소기업 직원들도 정치에 나서지 못하는 사정은 다르지 않다. 눈치 볼 윗사람이 없는 전문직종사자들도 정치불신과 정당혐오가 강해서 정당 활동에는 몹시 소극적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정당정치를 채우는 가장 큰 집단은 일부 먹고살 만한 자영업자들이다.
우리사회의 정당민주주의와 선거민주주의가 자영업에 종사하는 중장년층 남성들에게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은 정치 왜곡과 정치 불신을 낳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노조마저 조직율이 10%밖에 안 되는데다 정치적으로 고립된 탓에 한국정치는 재벌 등 부자들과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관료, 언론, 사법 엘리트들이 좌지우지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재벌 등 가진 자들이 겉으로는 유력정치인과 자영업자 당원들을 정치전면에 앞세운 채 배후에서는 각 부문 엘리트들과 유착하며 계급적 이익을 관철해온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아닌가 싶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기형적 모습으로 오작동하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교사와 공무원, 청소년의 정치 배제도 제도적으로 큰 몫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성과 진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공무원, 청소년을 정치와 시민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사와 공무원, 청소년의 정치 배제가 도무지 21세기 G20 국가,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고 합리적 논거가 몹시 박약하다는 점이다. 보수일색 국가인권위와 중앙선관위마저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섰으니 희망을 잃지 않을 일이다.
투표권을 제외한 교사의 정치기본권 박탈은 그동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유지돼왔다. 하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수업시간에 교사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주입, 교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다른 것을 금지할 이유도 없다. 논쟁적인 정치현안이라도 균형 있게 다루기만 한다면 설령 교사가 당적을 가져도 해를 끼칠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정당가입과 정당활동, 선거운동과 입후보 금지는 불필요하고 생뚱맞다. 수업시간 중 교사의 정치적 주입, 교화 금지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치기본권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본성상 너무나 기본적인 인권이다. 당연히 최대한의 보장이 필요하고 일부제한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규제만이 정당화된다. 우리 인격의 고유하고 필수불가결한 구성부분이 과잉규제당할 경우 전인적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겪게 돼있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지금처럼 제약하는 것은 교사와 공무원을 영원히 미성숙 상태에 놓아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관료주의와 엘리트주의는 정치적 열정과 시민적 연대를 경험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함정에 다름이 아니다.
물론 공무원과 교사,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과 정치 편입으로 빈사상태의 한국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활력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병통치약은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한국의 정당정치는 교사와 공무원으로 대표되는 중산층과 전문직의 배제와 소외 위에 서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사정당과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위로는 제왕적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재벌에게 줄을 서고 아래로는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 물든 자영업자 당원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정치기본권을 보장받은 교사와 공무원, 청소년이 대거 당원으로 신규 공급되면 한국의 정당정치에 새로운 자양분이 되고 정당문화를 바꿀 것이 틀림없다.
교사와 학생의 참정권 확대는 교육현장에서 보이텔스바흐 원칙이 뿌리내릴 것을 요구한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보이텔스원칙에 따라 정치현안 교육을 받아야 유권자 노릇을 잘할 수 있다. 교사는 논쟁적인 정치현안을 다룰 때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라서 정치중립을 지켜야만 정치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을 방지하고 학생의 독립적인 정치적 역량을 길러주는 데 꼭 필요한 공통의 안전장치다. 진보교육감들이 교사와 학생의 참정권 확대를 통해 방전상태의 한국 민주주의를 재충전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입법과 협약으로 제도화하는 일에 앞장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