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교권회복의 길을 찾아서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종합계획’ 발표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의 날’인 지난 11월3일 3개년 ‘학생인권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종합계획에는 상‧벌점제를 폐지하고 전자기기 사용과 소지품 검사·압수 및 두발·용모단속을 비롯한 생활지도 가이드라인 등이 담겼다. 또 학교운영위와 학칙 제정 등에 학생참여를 확대하며 만18세 선거권 등 학생의 사회적 참여 여건 조성 노력 등이 제시되었다.
종합계획이 발표되자 한편에서는 환영이, 다른 한편에서는 학생지도의 어려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종합계획의 법적 근거가 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도 이미 5년차가 되었고, 특히 촛불탄핵을 거치면서 우리사회 민주주의 의식지수가 높아지면서 2011년 체벌금지 때만큼 부정적 의견 강도가 거세진 않은 듯하다.
진보교육감 등장, 혁신학교 확대와 더불어 학교 민주주의는 교과서가 아니라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민주주의가 교문 앞에서 멈춰선 채 배회하고 있는 학교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종합계획은 학교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학생인권강화를 걱정하는 사람들
굳이 헌법을 논하지 않더라도 인권이라 함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종합계획 발표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들이 생기는 건 왜일까? 이는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다루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한편에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교육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거나, 상품을 파는 일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일이다. 교육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변화‧성장하며, 감정과 이성을 가진 ‘인간’과 만나는 일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관계 맺기를 통해 개체로서의 인간적 성장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이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적 행위는 교사와 학생 간 상호 존중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와 경쟁논리에 압도되어 극도로 황폐화되어 왔다. 그 결과 오랫동안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입시 성공을 지원하는 기능인으로, 정부에게는 전국 11,800개라는 거대한 교육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말단 행정 직원처럼 인식되어져 왔다. 교사와 학생 간에 신뢰와 상호존중이 끼어들 여지가 너무 좁다. OECD 국가 대상 국제조사에서 교사에 대한 존경심 최하위가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에게 교권이 제대로 선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모두 행복할 수 없다. 교사에게도 교권이 없고, 학생에게도 학생인권이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교권이란 교육할 권리다. 이전에는 교사에게 자율적으로 가르칠 권리가 없었던 게 큰 문제였으나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학생들의 교육거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기실 이전에 후자의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이 교육이 잘 이루어졌었기 때문은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권위주의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고, 따라서 학교 안에서도 그것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 때도 여전히 제대로 된 교권이나 학생인권이 우리의 학교에는 존재하지 못했다. 잠자거나, 쪽지를 쓰거나 떠드는 방식으로 소극적 저항을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교사에게 대들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는 적극적 저항을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본질은 같고 사태는 더 복잡하고 심각해지고 있다. 오늘날 이 사태는 너무 오랫동안 교권도 학생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해온 총체적 결과가 아닐까.
따라서 마치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는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오해일 뿐 아니라 진실을 가리는 것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학생들의 인권은 사회와 어른들이, 특히 교사들이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지만, 성인이자 교육전문가인 교사들의 교권은 스스로 지켜왔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통제나 처벌이 아닌 교권회복의 길 찾아야
오늘날 학교교육 상황이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학생인권 강화를 반대하거나 또 다른 통제수단을 요구함으로써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에 강조점이 두어져야 한다. 인간적 신뢰와 교육전문성에 기초한 교권이 아니라 기존의 권위주의적 방식에 의존한 교권 지키기는 더 이상 우리 사회 민주화 수준에 걸맞지 않다. 오늘날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쩌면 교육적 노력 대신 처벌과 통제라는 손쉬운 방편에 너무 오래 의존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힘들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존 방식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행정 말단직원이나 입시지원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아이들은 교사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태도를 갖게 된다. 개별교사나 개별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안의 전체적인 문화, 학교 안 인간관계 양식에 상호존중과 신뢰가 관철되는 경우에는 교사에 대한 반발이나 공격적 행동이 발생할 소지가 현저히 줄어든다. 혁신학교의 경험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보적 관계
물론 그럼에도 소수 예외적인 극단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예방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방안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학생인권 강화를 대체하거나 혹은 선후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방안이 교육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도 학생인권이 보호받고 존중되는 학교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문화와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것은 단지 사후적 단죄와, 처벌에 대한 공포에 의존하는 비교육적 예방책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학교폭력과 교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다양한 대책을 먼저 고민하고 수립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임에도 학생인권 강화를 위한 계획부터 발표한 것은 문제”라며 ‘학생인권보다 교권이 먼저’라는 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교총의 발표는 이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합리적 소통이 한계에 봉착할 때 폭력이라는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합리적 소통의 기본 전제는 상호존중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학생인권 존중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마치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이 무관하거나 별개의 문제인 듯 말하는 것은 무지이거나 왜곡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보적 관계이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존중받는 사람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이다. 이 점에서 교권을 지키기 위해서도 학생인권 보장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들과 친구처럼 친하지만, 친구는 아니다” 얼마 전 학생 30명과 한국을 방문한 덴마크 교사의 발언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무심코 한 이 말이 우리 한국 교육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생인권이냐, 교권이냐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에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