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시춘 선생님과의 만남
인터뷰 : 박미자 ((사)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상임이사)
새 봄입니다.
우리사회가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일렁거립니다. 세상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움직임이 각분야에서 일어나면서 역동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봄에 우리 회원이며 이사이신 유시춘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게 되었습니다.
유시춘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에서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 설립되던 2001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소설가로뿐 아니라, 민주화운동가이며 인권활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민주시민교육을 표방하고 활동하는 우리 회원들에게 해주실 말씀도 많으시리라 기대됩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
Q. 선생님께서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셨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 탈출하는 심정으로 서울로 진학을 결정했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주시지요.
A. 그래요. 탈출하는 심정이 아니라 실제로 탈출했지요.
경주에 살면서 경주여중 졸업하고 대구여고를 다녔어요.
고 3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대로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사는 삶이 너무나 답답할 거 같았어요. 실제로 밤에 가슴이 조여오고 깜깜해지는 걸 느꼈지요. 경주여고 역사교사이셨지만 아버지는 병약했어요. 큰집을 비롯한 대소가 어른들은 내가 취직해서 동생들 교육과 가난한 집안 사정에 보탬이 될 것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나는 맹랑하게도 그시기에 (1960년대말-70년대초)여성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굉장한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어요.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고려대에 몰래 응시원서를 제출했지요.
아버지는 모른 체하고 눈감아 주셨어요.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 아버지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돈보다는 지성을 가치있게 여긴 이상주의자였어요. 과년한 딸이 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 아버지는 딸의 모험을 용인해 주었어요. 이것이 행운이었음을 나는 쉰 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짐을 싸서 야반도주하다시피 상경하여 대학시험을 보았고 서울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 찬바람 매서운 대구역 광장에서 길게 줄을 서서 서울행 차표를 끊어주시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자기 한 몸, 가족만을 위해 산다면 굳이 대학공부까지 할 필요는 없다”
딸에게 차표를 쥐어주고 낡은 코트 깃을 세우며 돌아서던 아버지의 춥고 쓸쓸한 뒷모습이 아직 화인처럼 가슴에 남아있어요.
Q. 선생님께서 대학을 졸업하시고 교사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신군부시절인 전두환정권 시기에 해직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해직 후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전념하시게 된 것 같은데 어떤 연유였나요?
A. 1985년 광주민중항쟁 5주년을 맞아 대학생들이 연대해 을지로에 있는 미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 진상규명과 전두환 책임’을 외쳤어요. 학살이 있은 지 5년 만에 햇볕 속으로 5.18항쟁이 걸어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구속되고 첫 재판이 열린 날, 대법정을 농성장으로 되었습니다. 방청석의 가족 친지들이 피고인 학생들과 함께 ‘상록수’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습니다. 나는 그분들과 함께 아수라장이 된 법정을 나와 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다가 피고인들의 친지들·가족들과 함께 모두 종로경찰서로 끌려가서 이틀간 구금되었습니다. 현직교사 시절이었는데 사흘 뒤 출근해 보니 학교에 치안본부, 안기부 고위인사들이 와서 ‘빨갱이년’ 파면하라고 드잡이를 했더군요. 나는 다니던 학교에서 그렇게 해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민’자 돌림 여러 단체에서 공익근무를 했습니다. 흐흐.

Q.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와 1987년 6월 항쟁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십시오.
A. “1987”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 아이들로부터 1987년 6월항쟁에서 활동해 주신 분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킬 수 있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넘어 “민주화운동 세대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87년 6월 항쟁은 군부독재를 몰아낸 엄청난 민주화운동으로 지금 청년들에게 부모세대에 대한 자부심이며, 촛불항쟁의 모태이기도 하지요.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6월항쟁의 중심운동체였다고 기억합니다.
Q. 그 당시 선생님의 나이가 36세입니다. 선생님의 경력을 보면 당시에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하셨더군요. 가정을 가진 여성으로 부모역할만으로도 힘겨운 시기였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시절에 활동한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A.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구심체, 지도부 역할을 했지요. 내가 그 젊은 나이에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전국을 다니며 활동을 공유하고 조직하였습니다. 전국의 모든 민주화운동 단체, 학생, 노동자들이 함께했고, 지역적으로도 서울에서 제주, 연령별로도 1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대했습니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 단일대오를 형성한 ‘신간회’에 비유될 정도로 거국적인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직선제개헌 쟁취라는 최소목표를 향한 ‘최대연합’이라는 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진행했던 1987년 6월 항쟁은 우리 현대사에서 몇 안되는 ‘승리’이지만 이는 그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절차적민주주의’라는 부분적이고 짧은 승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4.19나 5.18과 달리 5.16쿠데타와 전두환신군부의 집권이라는 즉각적인 반동을 불러오지는 않았으며, 그 후,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활동이 발전하였습니다.
Q. 당시에 민주화운동하느라 자녀에게 미안했거나 안타까웠던 점들, 더불어 잘했다고 생각했던 점들 등 엄마로서 가졌던 심정들을 조금 말씀해주십시오.
A. 당시에 유치원 다니는 남매를 두었는데 엄마가 너무나 많은 활동을 하느라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많이 미안하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저의 그러한 활동도 부모로서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큰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적어도 ‘군사독재’는 벗어나야한다고 확신하며 활동했으니까요.
Q.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민주시민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진행되는 MeToo운동에 대하여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하여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우리 국민은 위대합니다.
이승만 민간독재.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모두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5월, 국민들의 촛불항쟁으로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지난 촛불항쟁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공공성을 사유화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한국교육의 힘이 발휘된 결과라고 봅니다. ‘집단지성’의 힘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난제들도 역시 자라나는 세대가 풀어야 합니다.
MeToo운동은 민주시민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모두가 소중한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민주시민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평창올림픽 이후 진행되고 있는 남북간의 평화모드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참고로 (사) 징검다리가 지난 2018년 3월부터 6.15공동위원회 서울본부에 참가하여 남과 북의 평화와 교류협력에 관심을 갖고 함께 연대하기로 하였습니다.
A. 지구상에 휴전협정이 60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있나요?
빨리 평화협정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남과 북의 대결과 갈등은 구성원에게 증오를 부추기는 반인륜적 인간성을 양산합니다. 후진적 정치환경들은 이러한 남북간의 대결과 갈등을 교묘하게 악용하기도 합니다. 이 단세포적 미개상태를 끝내기 위해서 서로 힘을 합치고 연대해야 합니다.
Q. 선생님 소중한 말씀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우리 징검다리 회원들께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우리가 반세기 만에 전쟁의 초토를 딛고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그 가장 주된 동력이 교육에 있습니다. 훌륭한 민주시민이 정의로운 국가의 기본조건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공교육 투자는 더 확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부모가 책을 즐겨 읽고 공동체가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면 자식도 그러한 부모의 삶을 배우는 법이지요. 좋은 부모는 그래서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 징검다리교육공동체 회원님들 반갑고 고맙습니다.
새 봄에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