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선거권 행사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민주시민교육이다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우리 국민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가장 아름다운 시민혁명을 몸소 실천하여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썼다. 촛불혁명은 위대한 시민적 실천이었다. 촛불혁명은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 미투운동이 일어나고 삼성의 무노조 신화가 깨지고 있다. 국회와 정치권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현안해결에 직접 나선 청와대 청원이 지난 8월 이후 올 4월까지 17만 건에 이르고 있다. 머리를 삭발하고 40일 가까이 국회 앞에서 ‘청소년 참정권’ 획득을 위해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투쟁 역시 민주주의 영토를 넓히고 촛불혁명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역으로 촛불혁명은 1,700만 명이 혹한 속에서 23주의 주말을 반납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우리나라 민주주의 기초가 취약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의 순간에 폭발적인 힘으로 역사의 후퇴를 막아냈지만 민주주의를 일상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과제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튼튼히 하기 위한 노력은 각 분야에서 직접적인 민주적 실천을 하는 것과 아울러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말한다. 그만큼 선거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핵심적 요소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주권의 일부를 위임할 대표를 뽑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OECD 뿐 아니라 전 세계 230여 개 국가 중에서 19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2개 국 뿐이다. 세계 상위 10위권 경제대국의 민주정치 성적표는 세계 하위 10위권에 있다는 얘기다.

 

이와 같은 정치후진성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민주시민교육을 협소화시켜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교육방법론으로 실제 체험이 갖는 교육적 효과에 대한 긍정성은 이미 상식이다. 하물며 선거권이 모의선거가 아니라 실제 선거참여 형태로 행사되는 경험은 주권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가능케 한다. 선거권 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선거제도, 민주주의 정치 형태 및 원리, 주권자의 책임과 권한 등에 대한 살아있는 학습을 하게 된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제도학습이 갖는 교육적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다.

 

대의제가 유지되는 한 한 사회의 정치수준은 올바른 선거권 행사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국민의사와 배치된 국회구성으로 인해 촛불혁명 완성을 위한 골든타임을 경과하고 있는 이 때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면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성의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성숙한 투표권 행사라 할 수 있다.

 

독일, 스웨덴,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투표권을 갖지 못한 학생들조차 실제 출마 후보들을 상대로 한 모의선거를 국가적 차원의 민주시민교육으로 실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우리의 중학생에 해당하는 7학년 이상의 학생이 참여하는 모의선거를 2020년에 독일 전체 학교 100%가 참여하도록 한다는 목표로 이를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이는 선거에 많이 노출될수록 민주시민의식이 고양되고, 선거참여율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선거를 민주시민교육의 중요한 일부라고 인식한 결과다.

 

하물며 실제선거 참여가 아닌 모의선거에도 이렇게 여러 나라들에서 그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실제 선거권을 행사하는 주권자 경험이 갖는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이번 6월13일 실시되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즈음하여 18세 선거권 하향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전국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학교 교육과정과 결합한 모의선거 프로젝트도 제안하여 진행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선거권을 갖게 되는 것을 학교의 정치화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실로 앙상하고 빈약할 뿐 아니라 교육을 걱정한다는 말로 교육을 망치는 전형적인 예다. 그들의 논거에는 학교가 정치진공상태여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지만 실은 정치적 중립화, 정치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말로 또 다른 정치화를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정치의 진공상태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정치를 얘기하지 않는 것 자체도 특정한 정치적 견해이고 태도이기 때문이다.

 

둘째, 18세 선거권 하향 반대는 우리 사회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을 현격하게 낮추는 사회적 기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4.19를 비롯해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청소년들의 정치의식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청소년은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취급받고 있다. 사회는 오로지 그들을 보호해야 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철저한 문화와 상품의 소비자로만 대접하고 있다. 그들이 누려야 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사회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법에서 규정된 것조차 아동·청소년에 해당되는 것들은 함부로 손쉽게 무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 기본법, 청소년 복지지원법, 청소년활동 진흥법 등에는 청소년들의 자치와 문화적·교육적 권리에 대한 많은 사항들이 적시되어 있지만 이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방기해도 법적 처벌이나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는다.

 

선거권을 갖는 유권자로서의 지위가 없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자주 삭제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우리사회 구성원이라는 현재적 존재이며, 무엇보다 우리사회 미래를 의탁해야 할 미래적 존재이기도 하다. 현재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이 존중되지 못하는 정치풍토로는 아이들 삶의 현재적 고통을 치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사회 미래가 암담해질 수 있다. 따라서 18세 선거권 하향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사회 미래와 관련된 모두의 문제다.

 

최근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정보 중심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쉬워지고 있다. 아이들 역시, 아니 아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빠르고 손쉽게 세상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유능하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고려한다면 선거권연령은 18세보다 훨씬 더 낮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위해서도, 우리사회 일상의 민주주의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도 선거권 연령 인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다.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며 여의도 국회에서 천막쇼를 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