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학생인권과 민주시민교육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민주주의는 사람은 모두 생각과 느낌, 취향과 재능 모든 면에서 다 다르다는 점, 그러나 인권을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같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이 ‘다름’과 ‘같음’ 사이의 균형이 잘 이루어질수록 개인과 사회의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에서는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을 교육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시민을 길러내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를 갖는 교육에서 학교구성원의 인권존중은 당연한 기본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목적은 물론 교육효과 측면에서도 학생이 인격적 주체로 인권을 보장받을 때 배움의 내면화 정도, 학습의욕과 효능감이 높아진다. 지식과 기능의 습득이라는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가치와 태도, 역량을 기르는 일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디지털 중심 초 연결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라는 SKY캐슬에서는 교육이 인권은커녕 인간성을 말살하는 잔인한 현실의 원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적과 등수, 입시성공이 교육성공으로 등치되는 한 교육에서 인권이 설 자리는 없다. 다소 과장된 묘사이기는 해도 학교가 성장이 아니라 선발을 위한 기관으로 기능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다.

2018년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올 초에는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요구하며 혈서까지 쓰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소위 진보교육감 등장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춘다는 이야기는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혈서까지 쓴 이들의 학생들을 무엇인가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한 선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들의 선의는 그들이 그렇게 보호하려는 학생들을 지옥으로 인도한다. 인권은 인류가 피 흘려 쟁취한 최소한의 기본권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선택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 없는 천부적 권리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약화의 원인인 듯한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권을 존중받은 이는 상대방의 인권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는 혁신학교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이 동시에 살아나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의 교권약화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의 결과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제로섬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학교에서 교육이 실종되었음을 고백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교사의 교육할 권리는 학생 권리를 약화시키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해 교육부장관의 대통령 주요업무보고에서 학생회 법제화 계획이 보고되고, 제3차 교육자치정책협의회에서 학생회 법제화와 학교운영위원회 학생대표 참여를 보장하는 법 개정 제안 안건이 통과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12월 31일 광주의 한 고등학생이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위한 법 개정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하였다는 기사도 났다. 학생이 나서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이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 제도나 원리에 대한 지식교육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민주적 교육방법, 민주적 인간관계,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민주적인 학교문화가 형성될 때에만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은 물론 교육과 관계된 모든 이들의 인권존중은 그 기본토대다.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지켜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16년 겨울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확인하였다. 그 교훈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과 그 기본전제인 학생인권 존중을 여전히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거나 구호와 문서상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고통이요, 우리나라 교육을 후퇴시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또 다른 국정농단이나 민주주의 파괴를 용인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학생인권은 조례나 법으로 강제하기 전에 교육의 기본원리로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다름’과 ‘같음’의 균형을 만들어 낼 미래사회 주인을 길러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