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새로운 100년 교육의 길을 묻다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3.1 100주년을 맞아 사회 각 분야에서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의 새 길을 열기 위한 움직임들이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3.1절 전후로는 다양한 기념행사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교육계에서는 지난 2월28일에 교육부와 국회 교육희망포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전교조, 교총 등이 함께 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미래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계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공동선언은 헌법31조 1항(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과 교육기본법 제2조(자주적 생활능력을 갖춘 민주시민 육성)을 실현하는 교육체제, 미래교육체제와 비전 및 평화시대 공존교육을 위한 협력,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선언하였다. 요즘 같이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교육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 커다란 방향과 흐름만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지켜지지 않는 교육현실이라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 필요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모호하고 추상적인 선언으로만 끝난 것은 몹시 아쉽다.
이에 비하면 전교조 등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일제 교육 잔재 해소운동은 보다 구체적이며 지난 100년을 넘어서기 위한 과제를 제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친일인물과 관련된 교가나 동상 등의 문제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제시된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새로운 100년의 교육은 과거 100년의 한계를 극복해야 가능하지만 과거 100년 교육이 남긴 과제는 훨씬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와 군사독재,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는 반동정치까지 겪어 온 지난 100년, 분단과 냉전의 상징적 대리전 차원에서 진행된 초고속 산업화와 극단적 시장주의가 자리 잡은 지난 100년이 초래한 한국교육의 명암은 한편에서는 교육의 양적 성장과 100%에 육박하는 고등학교 진학률을 만들어 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촘촘한 관리·통제의 관료주의적 교육과 교육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다. 전자는 지식교육 중심 교육체제의 양적 팽창을, 후자는 관료주의와 시장이라는 이율배반적 조합으로 인한 민주시민교육의 실종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지난 100년의 교육이 배움으로부터의 소외를 구조화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온 인간주의 교육,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교육주체들의 요구는 진보교육감을 등장시키고 교육자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역설적이게도 엄혹한 이명박근혜 시대에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혁신교육의 싹이 돋아나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화되는 동력이 되었다. 황무지 같은 허허벌판에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과 제도권 밖 대안교육 운동이 그 씨앗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지난 100년 교육을 지탱해 온 교육주체들의 힘을 저항과 투쟁의 영역이 아니라 실험과 도전이 지원되는 주인의 자리에서 꽃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 단위 교육자치를 넘어선 실질적인 학교자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이 함께 만드는 협치에 의한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당연히 교육자치와 학교자치를 제약하는 관료적 교육행정체제의 민주화는 필수적 요구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과정과 절차, 시스템 상의 민주주의는 내용적 민주주의와 필수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무엇보다 교육내용과 목적을 규정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오로지 계층상승 사다리라는 관점에서 교육의 역할과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상호존중에 기초하여 수평적 다양성이 계발되고 그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기제가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소외와 배제의 질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의 가치가 내면화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욕망과 성장이 공적 가치나 질서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선 순환적 사고와 태도를 갖춘 인간이 길러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주의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자를 길러내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을 제약하는 일체의 장애물들은 과감하게 제거되어야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왜곡하여 학교와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문제나 사회현안을 다루는 것을 거세하는 법·제도, 민주시민교육의 제1주체인 교사의 시민적 권리를 제약하여 정치적 불구일 뿐 아니라 교육적 불구이길 강요하는 법·제도, 우리 사회 혐오와 배제의 근본 토대인 시대착오적 냉전 식 교육관, 기만적 성공담론으로 강요되어 왔던 인생 저당론,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접근되는 교육정책과 교육행정, 교육보다는 관료적 행정질서에 순응하는 이들을 양산하는 교원승진제도, 민주시민교육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교사양성제도 등이 그것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생명연장 기술 발달로 맞이하게 된 100세 시대, 디지털 중심 초 연결사회로의 진입, 분단해소와 한반도 평화시대의 개막,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붕괴라는 세기적 대 지각변동을 경과하고 있다. 아마도 향후 100년에 우리가 맞이할 과제들은 이러한 문제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100년의 교육은 전 지구적 문제해결에 대한 책무성을 인식하는 세계시민, 국제적 문제와 인류평화 구축에 민감한 세계시민, 창의성과 개방성과 소통능력을 갖춘 디지털시민, 세대의 벽에 갇히지 않는 평생시민을 배출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민주시민인 국회의원, 민주시민인 판·검사, 민주시민인 예술가, 민주시민인 기업가, 민주시민인 노동자, 민주시민인 프로그래머, 민주시민인 농부, 민주시민인 연구자, 민주시민인 엔지니어, 민주시민인 기자와 피디, 민주시민인 의사, 민주시민인 교사, 민주시민인 운동선수, 민주시민인 공무원, 민주시민인 경찰, 그리고 민주시민인 부모….
식민지배와 독재에 맞서 해방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역사는 촛불 탄핵을 기점으로 일상의 민주주의, 내용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본격적인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안에는 반드시 그 제도를 움직일 주체인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난 100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이다. 새로운 100년 교육은 배움의 방식과 공간에서 엄청난 다양성이 구현되고 학교제도의 경직성을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오히려 더 강력하고 풍부한 교육의 역할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새로운 100년 교육을 시작하는 지금이 ‘단 한 명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민주시민교육, 모두를 위한 세계시민교육으로의 대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