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아이들 살리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부터 시작하자 / 윤우현 징검다리 상임이사

곧 세월호 7주기가 된다. 나는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죄스럽고 참담하다. 침몰되는 배안에서 그저 ‘가만히 있으라’던 당시 상황과 촛불시민혁명 이후 지금의 모습이 별로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직후,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생회에서 긴급하게 세월호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혁신학교에 반대하던 교육감과 교장 때문에 2기 혁신학교 운영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은 ‘생활협약’을 계속하기를 원했고,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협약을 맺고 공동운영하기로 했던 ‘민주시민교육과정’을 지키고 싶어했다. 결국 학생회는 학생자치활동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던 ‘생활협약 토론회’ 대신에 ‘세월호 원인과 대책’에 대한 학생 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일명 ‘집단지성 원탁토론’ 방식으로 세월호 사건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모두의 의견(1인 1의견)을 모아내고, 모둠별, 학급별 원탁토론을 통해 학급별 의견을 종합, 발표했다.

최종 결론은 “학생을 살리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참 통렬한 결론이었다. 아이들은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라고 외치고 있었고, 세월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시민 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화 ‘기생충’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우리사회 기생충들이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고 나라 망하게 한다”고 써 붙인 포스트잇도 있었다. 그걸 보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누가 기생충이야?”라고 되묻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집단지성은 지금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학교교육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가만히 있으라’고만 가르치는 학교교육과 입시위주 교육정책이 대수술 1순위에 올랐고, 부패한 행정관청, 양극화된 사회구조,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자본주의, 권력중독에 빠진 정치인들과 광신적인 종교집단들 등등 사회전반에 걸쳐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3년후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났고 아이들의 진단은 현실로 입증되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어느새 촛불개혁은 껍데기만 남았고,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세월호 사건 때, 아이들이 간절히 원했던 “아이들 살리는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그나마 검찰개혁 등 뿌리깊은 권력적폐라도 개혁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까 했더니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권력기구로 돌려막는데 급급한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촛불개혁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차별과 혐오를 부추키는 극우파시스트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가뜩이나 불안한 시민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정말 나라 망하게 생겼다.

지금 당장 ‘아이들 살리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나라 헌법을 압축한다면 ‘민주주의’이고, 교육기본법 제2조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의 본령은 학생들의 ‘민주시민되기’를 지원하고 촉진하는데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인간상은 ‘민주시민’이어야하고, 그 핵심역량도 ’민주시민되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만큼 교육과정 구성의 가장 기본 원칙은 민주시민교육이자 학생의 삶을 가꾸는 교육, 학생중심 교육과정일 수밖에 없다. 최근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대부분 미흡한 민주주의에서 비롯된 만큼 민주시민교육은 우리사회가 더 깊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생명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념이나 주장, 대의적인 절차의 부족이라기 보다 대부분 중앙집권화된 권력과 대의제도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자 생활문화로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미셸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파시즘이라는 괴물 자체가 보통 사람들의 삶속에 스며들어 미시적인 영역에서부터 작동하기 때문에 삶의 방식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집단지성으로 내면화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지 않으면 우리 내부의 파시즘을 제대로 성찰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사회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300년 걸린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60년으로 압축하다시피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부작용들이 제대로 극복되지 못한 채 켜켜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압축 성장과정에서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고 생활과 학습이 분리됨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 발달과정에 커다란 빈자리가 생겨났다. 공감능력, 생태적 감수성, 공동체적 인간관계,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 나눔과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지성의 공동체문화와 같은 민주시민성을 경험하고 체득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소외-일탈문화도 그렇고 우리 사회 청소년 문제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악순환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후유증은 공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청소년 자살률 세계1위, 교실붕괴 등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입시교육과 배타적인 성적 경쟁, 세계 최장 수준의 학습시간으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는 여전히 학교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는 그러한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삶의 방식으로서 ‘민주시민되기’는 누군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생활속에서 더불어 함께 체득해나가는 집단지성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공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시민 교육과정’이 확고하게 자리매김 되어야 하고, 학교단위에서 부터 ‘앎과 삶이 함께하는 교육과정’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민주시민교육과정은 학교가 생활공동체로서 학교 구성원들간의 관계, 특히 교사-학생간의 관계가 통제와 지시, 지도가 아닌 어깨동무와 우정을 바탕으로 한 협치,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재구성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민주적 관계는 학생인권의 보장을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벌써 수십년 동안 학교에서 억압적 관계, 배타적 경쟁, 관료적 통제문화가 켜켜히 쌓여 있어 이를 제도 정책 차원에서 바로 잡는 것도 시급하지만, 실제로는 미시적 생활문화나 일상의 상호관계를 인권에 바탕을 둔 민주적 관계로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마침 2022 교육과정 개정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교육부도 소수 전문가와 관료들이 만들어 톱다운으로 일관하던 예전과 다르게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가겠다고 한다. 아래로부터, 풀뿌리 교육주체들의 참여와 협치를 바탕으로 사회적합의를 만들어 가도록 촉구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2022 교육과정 개편과정을 계기로‘아이들 살리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의 대장정을 시작하자. 온 사회가 권력중독에 찌들어 있는 이 때,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학교에서부터 생활속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자는 아이들의 간절한 외침을 받들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