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민회,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의 장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광장의 촛불은 정치를 위임받은 대의제 국회나 그 어떤 정당도 해내지 못했던 막강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헌법농단 사태를 종결하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실천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정치변화의 동력이었던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시와 정치적 개입력은 탄핵과 구속 이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시민들이 간절히 바라던 상식이 통하는 사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국가, 일상의 삶을 바꾸는 정치에 대한 요구는 대통령과 정부를 바꾸는 일로 대체되고 있다. 또 다시 국민의 정치참여가 투표 행위만으로 국한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은 시작일 뿐이다. 1천700만 촛불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힘이 되어야 한다. 제도권 정치인들이 촛불혁명의 열매를 독식하고 시민들을 들러리로, 통치의 대상으로, 정책의 소비자로 만드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4.19, 80년의 봄, 87년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
2017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한 시민적 각성을 경험하였고, 최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왔다. 국민의 힘으로 입법부와 사법부를 움직여 행정부를 바꾸어 냈다. 역설적이지만 대의제가 가진 한계를 가장 비조직적이면서도 조직적인 방식을 통해 뛰어넘는 역사를 이루었다. 촛불 탄핵 이후 국회나 정당만이 정치를 독점하는 기존의 방식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이를 시도하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 현행 정치제도는 촛불광장의 정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20여 차례나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황은 촛불탄핵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촛불 광장의 정치를 아주 특별한 시기의 아주 특별한 경우로 한정지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당신들의 역할은 끝났으니 우리에게 맡기고 지지나 해 주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이 입증했듯이 의회도, 정부도, 법원도 뛰어넘는 국민들의 힘을 우리 정치에 일상적으로 반영하는 것만큼 대한민국 정치를 발전시킬 대안은 없다. 따라서 이제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제도정치권의 한계를 보완하고 국민의 뜻에 입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 정치가 실천되어야 한다.
세계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쓸 만큼 각성되고 위력적인 국민의 힘은 이제 광장의 정치에서 토론과 집단지성의 정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권자 시민들이 정치의 직접주체로 나서 정당과 정치인, 정부와 새 대통령을 견인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강한 민주주의가 실천되어야 한다. 이것이 시대의 요구다.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수준 높은 제도화를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적이다. 새 정부는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독려하며 촛불민심을 담아내는 개헌뿐 아니라 그에 부합하는 전 방위적 개혁을 해야 한다.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개혁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시민동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기약 없는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시민동력의 활성화 기제로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시민참여 개헌과정이다.
촛불민심을 실현하는 구조개혁의 정치는 지속적인 시민공론의 장으로 뒷받침될 때만 전진을 기약할 수 있다.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국민참여형 개헌을 요구하며 시민의회법이 제안되고 있다. 시민의회는 국회 중심 개헌이나 대통령 중심 개헌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이기는 하나 또 하나의 대의제적 해결방법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따라서 제도권 정치세력에 독점되는 개헌을 막기 위해서도, 새로운 시민대의제인 시민의회의 제한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도 자발적 시민들이 참여하는 개헌 민회가 전국에서 운영될 필요가 있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개혁 요구를 담아낸 개헌의제 국민토론회가 열리고 그 결과가 시민의회나 국회개헌특위 활동의 기초가 된다면 실질적인 국민참여개헌, 국민에 의한 개혁이 가능해진다. 자치구나 군 단위로까지 이것이 확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이미 촛불광장에서 일반 시민들의 놀라운 정치의식과 정치 문해력을 확인한 바 있다. 민회가 일반시민이 주도하되 주제별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다면 훨씬 더 깊고 구체적인 해법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전문가결합형 지역민회는 새 정부 출범이후 전개될 개헌 및 개혁국면에서 시민동력을 만들어내고 시민의지를 표출하는 효과적인 통로가 될 것이다. 직접적인 정치참여만큼 확실한 정치교육은 없다. 개혁과제, 개헌안을 국민들이 직접 토론해 만들어 내는 민회야말로 또 한 번 우리 정치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며, 가장 효과적인 민주시민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