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기술중독사회 – 켄타로 토야마 저 /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출처 : http://m.blog.naver.com/gaebbul99/220989400575

사회 문제 해결의 해답은 기술 의존이 아니라 인간 존중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기술 ‘중독’이라는 제목에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신념을 담고 있다. 부제에서 ‘첨단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라고 묻고 아니라고 답한다. 기술은 인간 성향을 증폭시키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컴퓨터공학 박사 켄타로 토야마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가나 인도 등 개발도상국 빈곤계층 구제활동 및 교육을 위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경험으로 이 책을 썼다. 기술은 사회에 독자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사상, 정책, 법과 제도와 ‘묶음 해법’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를 ‘패키지 개입’이라는 작위적 용어로 불렀다. 그런데 저자는 기술과 마찬가지로 패키지 개입 그 자체도 사회를 크게 바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은 인간의 ‘올바른 생각’과 ‘선한 의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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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를 생각해 본다. 학교와 교육을 바꾸겠다며 매년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기술적 영역에 투입한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교육정보화는 이름으로 교사마다 1인용 PC를 보급했고 교실마다 컴퓨터와 빔프로젝트를 설치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으로 정보를 집적하여 통합 관리하였다. 디지털 교과서를 보급하겠다며 수백억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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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술과 그에 따른 패키지 개입은 학교폭력, 과열입시경쟁, 사교육비 폭등, 교육 불평등과 양극화, 아동 청소년 인권 등의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빈곤가정 아동의 정보 접근권 보장을 통한 교육격차 해소 등은 왜 아무런 성과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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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의 핵심을 사람과 그 관계의 질을 관리하는 데 두기보다 기술적 환경 조성에 두는 한 그 한계는 명약관화다. 그럼에도 학교현장은 늘 교육의 논리보다 기술지상주의자들의 논리가 앞섰다. 그 논리의 이면에는 기술보급을 통해 자본의 확장을 꾀하는 경제 논리가 숨어 있음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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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정보에 접근할 환경을 완벽하게 갖춰 주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독해하고 취사선택하여 가공 편집 창조 단계로 발전하는 과정엔 반드시 교사의 조력이 필수다. 학생-보호자-교사-학교-교육행정기관의 민주적 관계에 바탕한 상호 존중과 소통 환경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기술적 장치들은 생활의 패턴을 바꿀 뿐 더 나은 삶과 교육을 보장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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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상 교육현장에서 교사-학생 관계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최대 변수는 ‘학급당 학생 수’다. 교직 생활 22년, 20번째 담임을 하며 23명이라는 역대 가장 최소의 인원을 맡았다. 첫 담임 48명, 최근에 35명 내외, 작년28명에 이어 올해 23명이다. 내 경험상 학생과 관계의 질이 높아지고 아울러 교육 효과가 급격히 나아짐을 느낄 때는 학급당 인원수가 팍팍 줄 때였다. 교실에 컴퓨터와 빔프로젝트가 들어와 일으켰던 변화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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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급당 인원수가 줄어드는 것은 정책 효과가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다. 정책은 오히려 학급 수를 축소하여 학급당 인원수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거꾸로 가는 실정이다. 참고로 OECD에서 권장하는 학급당 학생 수는 15명 선이다. 이 정도가 구성원들이 함께 호흡하며 활동하기에 적당한 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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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징검다리교육공동체 미래교육원의 4월 학습교재로 읽었다. 나는 사실 별로 새로운 내용은 얻지 못했다. 더구나 글쓴이가 문제인지, 번역자가 문제인지, 아니면 읽는 내 문해력이 문제인지 책이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학교가 아닌 곳, 특히 기술적 분야에 종사하던 분들에게는 상당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는 것을 토론 과정에서 알았다. 빌 게이츠가 이 책을 두고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촉구하는 책’이라며 찬사를 보낸 것과 같은 이유인 듯하다. 오히려 토론 과정에서 기술을 어떤 태도로 대할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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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술에 대한 태도를 생각할 때면 늘 떠오르는 장자의 천지(天地) 편에 나오는 구절이 떠올랐다. 7년 전에 썼던 ‘통섭’의 서평 마지막 부분을 옮기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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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子貢)이 초(楚)나라를 유람하다가 진(晉)나라로 가는 길에 한수 남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노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밭에 내고 있었는데 힘은 많이 드나 효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딱하게 여긴 자공이 ‘용두레’라는 기계를 소개합니다. 노력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큰 기계를 소개하자 그 노인은 분연히 낯빛을 붉혔다가 웃음을 띠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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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機事)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純白不備).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神生不定),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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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노인의 입을 통해 공자 학단의 인물인 자공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점에서 위 장자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지요? 효율과 경쟁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숭상하며 생산성을 제일의 성과로 여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근대성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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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사람을 등급화하고 서열화하여 인간의 구획을 나누는 것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학교도 끊임없이 구획화합니다.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라던 노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이 무자비한 시스템 속에서 인성을 고양시킬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