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시민교육]선거? 청소년도 알 건 알아야죠! (출처 :경향신문)

출처 : 경향신문

 

선거? 청소년도 알 건 알아야죠!

6월 7일 서울 휘봉고에서 1학년 학생들이 모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 백철 기자
6월 7일 오전 11시, 수업시간이 한창인 서울 휘봉고등학교 건물 복도에 1학년 1반 학생들이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기표소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 손에 들린 투표용지 하나에는 서울시장 후보들, 또 하나의 용지엔 서울교육감 후보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아직 지방선거일도 아니고, 만 19세도 아닌 학생들이 어떻게 투표를 할 수 있었을까.

휘봉고 학생들은 ‘모의선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징검다리 교육공동체에서 제안한 이 프로젝트에는 서울, 경기, 광주 등 전국 17개 학교 400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의 투표 결과는 지방선거가 끝난 후 공개될 예정이다.

모의투표는 실제 투표와 같은 방식으로 치러졌다. 각 반에서는 선거관리위원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학생 3~4명을 선발했다. 선관위원 학생들은 자기반 학생들의 얼굴을 확인한 뒤 투표용지를 두 장씩 나눠줬다. 기표소에서 기표를 마친 학생들은 투표용지를 접어 담당교사가 담당하는 투표함에 넣었다. 투표함은 교무실에 보관되었다가 실제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개봉될 예정이다. 수업 시작 전 담당교사인 김영복 교사(역사)는 “여러분의 투표는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발표된다. 여러분의 표가 모여서 휘봉고의 의견으로 발표가 되는 것인 만큼 신중하게 공약을 따져보고 투표를 해 달라”고 설명했다.

지방선거 끝난 뒤 투표 결과 발표

투표를 마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봤다. 정민지 학생은 “중학생 때는 선거나 나라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는데 작년에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걸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커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 지방선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번에 학교에서 선거교육을 한다기에 집에 있는 선거공보물도 한 번 읽어봤다. 그동안 친구들끼리 학교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나라에서 이런 걸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들이 많은데 우리의 불만사항을 많이 반영해준 후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후보에게 투표했냐고 물어보자 “비밀선거라서 말하면 안된다”며 멋쩍어했다.

모의투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교에서는 모의투표 전에 학생들을 상대로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휘봉고는 6월 4일과 5일, 각 반에서 1차 선거교육이 진행됐다. 20분가량 사회 또는 역사 교사가 선거제도에 관해 간략히 설명한 뒤, 청소년 선거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지식채널e의 영상을 시청했다. 이후 20분간은 학생들이 각 모둠별로 서울시장, 서울교육감 후보들에게 바라는 정책을 토의했다. 마지막 10분간은 각 모둠별로 논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6월 7일과 8일에는 직접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 뒤 직접 복도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까지 이어졌다.

휘봉고 학생들은 서울시장보다 교육감에게 바라는 내용들을 많이 적었다. 남자반인 1학년 5반 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등하교시간을 조정해주세요” “한 학기에 한 번만 시험을 보게 해주세요” “등교시간을 9시로” 등 학업부담을 줄여달라는 의견을 많이 냈다. “학교 매점 대신 편의점이 들어오게 해주세요”, “학교 안에 PC방을 설치해주세요”처럼 얼핏 엉뚱해 보이는 요구사항을 적은 이도 있었다.

눈에 띄는 의견도 있었다. 혁신학교인 휘봉고는 학생들의 두발 자유를 보장하고 야간자율학습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서울교육감 후보에게 원한 의견 중에는 “강제 야자를 그만둬 주세요” “청소년에게 너무 공부를 강조해서 틀에 박힌 삶을 살지 않게 해주세요” “대학 진학만 학교에서 너무 강요하지 않게 해주세요”와 같은 내용이 많았다. 김채연 학생은 “사실 우리는 혁신학교라서 솔직히 저런 고민을 한 적은 없다. 모둠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우리가 겪지 않은 대학 강요, 강제 야자로 스트레스가 심하더라. 혁신학교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해서 적었다”고 설명했다.

단체장보다 교육감에게 바라는 의견 많아

같은 반 학생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의견을 교육감 후보에게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1학년 5반의 한 학생은 교육감 후보에게 “정시 비중을 많이 늘려주세요”라는 요구를 발표했다. 수능으로 대입이 결정되면 준비하기가 복잡하지 않은데 지금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뒤이어 교탁에 나온 학생은 “수능을 없애주시고 대신 직업 체험활동을 늘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다만 수업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학생들 사이에 서로 의견의 차이를 두고 토론하지는 못했다.

김영복 교사는 “저희도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수업시간을 배치하고 싶었지만 학습진도 등을 고려하면 2시간밖에 할애할 수가 없었다. 좀 더 토론이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시간이 다 되어서 아쉬웠다. 다음번 선거교육 때는 보강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혁신학교가 늘어나고, 한 반당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토론식 수업을 하기가 상당히 편해졌다고 말했다. 휘봉고 1학년의 경우 한 반 학생수가 17~20명 선이다. 김 교사는 “혁신학교의 경우 모둠별 토론학습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또한 반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해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모의투표 프로젝트가 기존의 모의투표와 다른 것은 학교 안에서 교육이 이뤄진다는 점도 있지만, 현실의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두고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밝힌다는 점에 있다. 6월 5일, 서울의 A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직접 3명의 서울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 12~13세의 중학교 1학년의 눈에서 각 후보 공약을 비판하는 학생도 있었다.

1학년 이재원 학생은 조희연, 박선영, 조영달 세 명의 후보의 공약에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고 봤다. 이 학생은 “조희연 후보가 친환경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고 하는데 친환경 무상급식만으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박선영 후보는 공기청정기를 모든 학교에 설치하겠다고 했는데 아주 작은 학교에까지 설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조영달 후보에 대해서는 “AI 에듀내비(인공지능 가정교사)를 보급한다는 공약을 내셨는데 학생들이 AI 에듀내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학생들인 만큼 혁신학교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1학년 정다은 학생은 박선영 후보 공약 중에서 혁신학교 폐지 부분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만든다고 하셨는데 혁신학교는 폐지하겠다고 해서 이상하다. 혁신학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휘봉고 1학년 1반 학생들은 6월 7일 모의투표를 하기 직전 서울시장, 교육감 후보에 대해 모둠별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장 후보만 8명, 교육감 후보가 3명이라 반 전체가 한꺼번에 토론을 하진 못했지만, 모둠 토론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평가도 진행됐다. 창가 안쪽에 앉은 모둠의 토의 내용을 들어봤다.

“이 후보는 여성 후보인데 너무 인권에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 오히려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한다고 하고 있어.” “이 후보는 정시를 50%까지 확대한다고 하는데 난 정시가 늘어나는 게 너무 좋아. 그런데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너무 나쁘게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워.” “이 후보는 나이가 젊어 우리랑 나이 차이가 안나는데 서울시장 후보로도 나오고 멋있는 거 같아.”

6월 4일 서울 휘봉고 1학년 교실에서 한 학생이 서울시장, 교육감 후보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옆반의 이해민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 모든 걸 다 판단할 수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평소 교사들이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이라고 강조했다며, “학생회장 선거할 때 말고는 우리가 ‘시민’으로서 우리 의견을 표출할 기회가 사실 없다. 선거 때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명함을 다 주는데 학생들은 어차피 투표권이 없다고 안주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모의투표를 계기로 집에 온 선거공보물도 한 번 읽어보고 학교 밖의 사회에 대해서 조금은 간접경험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에 이 모의선거는 서울시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지난 2월 서울시는 청소년 100여명으로 구성되는 청소년참여위원회의 모의투표를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서울시내 청소년 수련관 21곳에 설치되는 현장 투표소와 온라인 투표소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와 서울교육감 선거 모의투표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및 현직 구청장들이 대거 지방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실현되지는 못했다.

교육감 후보에 대한 토론회도 가져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모의투표를 ‘교육현장의 정치화’로 보도했다. 선거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자고 할 때마다 보수세력에서는 ‘교실의 정치화’를 이유로 반대해 왔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토론을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휘봉고와 A중학교 교사들은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동안 질문에 대해서만 답을 줬다. 간혹 학생들이 후보와 정당을 헷갈리거나, 현재 교육감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공보물의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가 안된다고 할 때 설명할 뿐이었다.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이번 선거교육은 교사가 바람직한 의견이란 이유로 학생들에게 특정 생각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한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입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징검다리의 모의투표 프로젝트는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만들어진 독일의 모의투표 프로젝트를 본뜬 것으로 보인다. 독일에는 ‘유니어 발’(juniorwahl)이라 불리는 청소년 모의투표가 활성화되어 있다. 1999년 시작된 독일의 청소년 모의투표는 10년이 지난 2009년 총선 모의선거에서는 1043개 학교의 24만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활성화됐다. 지난해 9월 총선 모의선거에서는 전국 3490개 학교가 참여해 79만여명이 투표했다.

강민정 징검다리 이사는 “지난해 대선 때 YMCA의 청소년 모의투표가 있었고, 올해도 서울시에서 모의투표를 실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모의투표는 학교 밖 민주시민교육으로 끝났다. 일부 교사들이 앞장서서 할 뿐이지 학교와 교육청의 지원은 받지 못한 채 교사 개인이 진행하는 활동이었다”며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모든 학교에서 모의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올해의 첫 학교 안 모의투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교육과정 안에 선거교육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