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정치교육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최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교육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학교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극단적인 정치편향으로 몰아 교사를 처벌하는 법안까지 제출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에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몇몇 매체 칼럼 등에서 다뤄지긴 했으나 학교 정치교육을 적극 옹호하는 의견들은 의외로 지극히 적다. 정치적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루는 것과 정치 편향적 교육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 경제, 법은 물론 심지어 과학이나 예술과 관련된 문제들조차 본질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더구나 민주시민을 길러내라는 교육기본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정치적으로 유능한 시민이 되도록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서 논쟁이 되는 모든 일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들이다.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것들을 둘러싸고 어떤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지, 그런 충돌을 공익적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으면 결코 정치적으로 유능한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생이면 1~2년 후, 초등학생이면 10여 년 후면 이런 온갖 충돌과 대립, 그리고 그것의 해결이 이루어지는 세상 속으로 던져진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말로 정치적 문제,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문제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 속 지식만을 암기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반(反) 교육적 망발이다. 더구나 교과서조차 정치적인 텍스트가 아닌가. 우리는 박정희 때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배웠고, 5.18 광주진압을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하는 교과서로 배웠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 학교 교육 장면에서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나타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교육에서 교화와 주입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검토되면서 논쟁성이 재현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얘기할 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학교 밖 정치세력의 직·간접 개입에 의해 이용되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교사가 개인의 특정한 정치적 견해나 이해관계를 위해 교육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학교 밖 정치세력이 학교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금지되어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교육이 정치세력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고통 받았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헌법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개입과 악용 금지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헌법 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일한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조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헌법 31조의 정신이 보다 분명해진다. 헌법 제5조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교육영역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져야 하는 ‘권리’적 성격이라면, 군(軍)의 영역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지켜야만 하는 ‘의무’적 성격이 된다. 헌법에서 이처럼 같은 정치적 중립성을 전혀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 국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외부 정치세력의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교육이 외부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받을 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직접적인 주체는 외부 정치세력이며 간접적인 책임은 국가(정부)에게 있다.

교육이 외부 정치세력의 개입이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보호가 없을 경우 학교교육이 정치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학교교육이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 학생이 그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 그 결과는 학생이 자율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현재 인헌고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외부 단체가 특감을 청구하고 학생을 고발하고 있다. 인헌고 당사자들은 최대한 민주적 방식과 절차에 의해 사태를 풀어나가려 노력하고 있는 데 반해 외부 세력의 개입은 이들의 이런 노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헌고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그들 스스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에서 제시되고 있는 교육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의 정치화’를 막아내고 ‘정치의 교육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학교가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학교가 ‘교육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는 이를 최대한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정치교육 역시 이런 대 전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은 정치적 상황을 재현하는 모의정치적 방식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 인헌고는 본의 아니게 정치적 세력이 학교교육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학교 자체가 정치적 상황의 일 주체가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지금 인헌고는 이중의 의미에서 정치를 ‘교육적으로’ 배우는 일을 실천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헌고의 학생들은 한일 관계와 같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민주시민교육 원칙에 입각해 배우는 것과 동시에 실제 정치적 상황 한 가운데를 통과하면서 정치화된 세력과 만나며,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그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모의정치적 방식이 아니라 실물정치적 방식을 통해 학습하게 되었다. 인헌고에 관여하고 있는 외부 정치세력들은 ‘교육’이 아닌 ‘정치’를 학생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우리는 가장 나쁜 방식의 교육의 정치화 사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인헌고 사태와 같은 상황이야말로 학교를 교육적 공간으로 지켜내기 위해 학교 밖 모든 이들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정치를 교육적으로 배우는 일이 아니라 교육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은 학교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며 학교는 이 자율적 과정이 교육적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최대한의 교육적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고 지원하는 것이 학교 밖 기관이나 사람들의 몫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책임은 교사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 사회와 국가에게도 요구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