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학습된 유권자가 강한 민주주의를 만든다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자가 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킨다. 이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면서 과연 우리의 학교교육은 민주시민을 제대로 길러내고 있는지, 오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성취로 1987체제를 만든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국정농단, 사법농단, 무능·파행국회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도 민주시민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목적은 법전 속에 갇혀 현실 속으로 들어오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학교 모의선거교육을 선거법 저촉 가능성을 근거로 사실상 전면 금지시킨 선관위의 최근 작태를 보며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선관위는 2017, 2018, 2019년 스스로 인정했던 학교 모의선거를 금지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 후보나 정당이 유추될 수 있다면 공약분석과 같은 선거 관련 교육도 법위반이라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있다.
선거관리 기관이 교육관리까지 거침없이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헌법31조에 보장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은 선관위의 보도자료 한 장에 맥없이 허공 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을 처벌할 법들이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선관위가 선거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일에 개입하며 특정 교육방법을 제한하고 나선 것은 과잉금지에 해당하는 명백한 권한남용이자 교육기관에 대한 권한침해 행위다.
선관위의 이런 행태에도 불구하고 선거교육이 뜨거운 사회쟁점이 되어 왔던 지난 두 달 동안 단 한 마디 공식적인 입장표명도 하지 않는 교육부는 교사의 교육권, 학생의 학습권과 교육감의 교육자치행정권이 침해되는 것을 손 놓고 지켜만 보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관임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 연동형비례제가 처음 도입되며 선거제도가 바뀌고 역사상 처음으로 교복 입은 학생 유권자가 발생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 어느 때보다 선거교육 필요성은 갑절 높아졌고 교육부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진 상황에서 우리가 보는 교육부의 한심한 모습이다.
이런 때에 교육전문성에 입각해 선거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 학교와 교사를 적극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교육부는 선관위에 단 한마디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거교육 교재까지 슬그머니 감추고 학교배포마저 철회하고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며 우리나라 교육을 책임져야 할 정부기관에 대한 국민신뢰를 무참히 깨버리는 작태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이며 민주시민교육의 꽃이 선거교육이다. 아무리 통치를 넘어 협치 시대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해도 대의제 사회에서 권력을 위임할 이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외교, 국방, 조세 등 국민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의 향방을 결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의 민주화 정도, 특히 정치에서의 민주화 정도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이런 일들의 수준과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민주시민 자질을 함양해야 할 학교교육은 주권행사의 핵심인 유권자 자질과 태도, 역량을 기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선거교육이 학교교육에서 중요한 이유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선거교육은 교과서에 갇힌 제도지식 이해교육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혁신교육 확대로 최근에 와서야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선거교육 시도들이 비로소 이루어지고 있는 수준이다.
100%에 육박하는 고교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학교교육을 통해 건강한 유권자를 길러내는 선거교육이야말로 사실상 전 국민을 학습된 유권자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실제 선거를 가장 유사하게 재현하고 이 과정을 학생들이 생생하게 체험하는 학교 모의선거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교육적 효과가 입증되면서 더 많은 나라들로 확산되어 보편적인 선거교육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2022년에 독일 전체 중고교 학생들 100%가 학교 모의선거 교육을 받도록 국가가 나서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다.
첫 지방자치선거에 참여하며 7장의 투표용지를 받아들었을 때의 난감함이 생생하다. 총선 때 내가 찍는 두 장의 투표용지가 어떤 결과로 연결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비교해 보는 유권자가 되는 것은 국민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질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통한 국가의 공적책무가 되어야 한다. 이미 성인이 된 유권자들이야 한계가 있겠지만 공교육 체계 안에 있는 학생 유권자나 예비 유권자들에 대한 교육만큼이라도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늦어도 한참 늦은 일이다.
선관위와 교육부는 학교 모의선거 교육을 방해하거나 뒷짐 지고 나 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적극 협력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교육청과 시민단체, 교사들이 팔 걷어 붙이고 나서는 일을 고맙게 여기고 지원할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학습된 유권자를 양성해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하는 길이며 총선을 코앞에 두고 선관위와 교육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