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앙선관위와 모의선거교육, 그리고 교사정치기본권 / 곽노현 징검다리 이사장

최근 중앙선관위가 학교에서 모의선거교육을 허용하고 정당가입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공표했다. 교사가 이끄는 학교모의선거교육을 작년 총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금지한지 1년여 만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2020년2월 선관위는 학교교육과정의 일환으로 교사가 선거수업과 모의투표를 실시할 경우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정치중립의무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며 학교모의선거교육을 금지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당시 징검다리는 서울선관위, 중앙선관위, 교육부를 찾아가 항의규탄 집회를 진행했다.

선관위의 2020년 금지입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변이었다. 공식금지해석을 내기 전까지 선관위는 학교모의선거교육에 아주 우호적이었다. 홈페이지에 홍보동영상을 만들어 올렸을 정도였다. 2018년 징검다리의 질의에 대한 공식회신에서도 선관위는 학생모의투표결과의 사후공표를 조건으로 학교모의선거교육을 할 수 있다고 해석했었다. 징검다리는 그 회신에 따라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의 17개 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모의선거교육 지원사업을 실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바 있다.

징검다리는 2018년의 실제경험과 2019년의 후속연구를 통해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모의투표 등 학교선거교육의 전면화 계기로 삼고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 서울교육청 등 일부 시도교육청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로써 선거시기의 교내모의선거교육이 학교교육의 새 표준으로 인정받을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언론보도를 타면서 교육과정 연계 학교모의선거교육이 교육계를 넘어 정치권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학교가 정치판이 되고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게 된다며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밝혔고 그러자 이번에도 교총과 보수학부모단체들이 보수야당의 주장에 장단을 맞춰 허수아비 춤을 췄다.

이렇듯 사안이 정치화되자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상 학교모의선거교육은 허용될 수 없다며 느닷없이 종전의 해석과 입장을 뒤집는다. 아니나 다를까. 임기 6년의 9인으로 구성된 중앙선관위는 2020년2월까지도 위원장을 포함한 7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양승태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은 보수인사로 채워져 있었다. 학교모의선거교육금지는 이들이 일제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그 오랜 우군, 교총의 눈치를 보며 당파적으로 행동한 결과다. 훗날 중앙선관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현저한 정치중립의무 위반사례로 기록될 게 틀림없다.

이번에 선관위는 과거의 금지해석을 공식 번복하거나 폐기하는 대신 허용입법을 제안하며 자신의 입장변화를 알렸다. 징검다리는 선관위의 입장선회를 반기면서도 선관위가 종전의 해석오류를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은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또한 선관위에 다음 질문에 대한 공식 답변을 촉구한다. 지금처럼 명문의 허용조항이나 권장조항이 없는 경우 학교모의선거교육은 선거법상 허용되는가, 아니면 금지되는가? 만약 지금도 선관위가 현행법 해석상 금지입장이 변함없다고 주장하며 과거입장을 옹호한다면 그건 결자해지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에서 선관위는 교육목적의 모의투표는 사전여론조사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후공표를 조건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인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학교선거교육의 대미를 장식하는 모의투표를 교육목적이건 아니건 사전여론조사로 보는 것부터가 문제다. 학교모의선거는 실제선거에 나선 후보와 공약, 그리고 실제선거의 열기를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교육 장치로 활용하는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하나일 뿐 아이들이 어떤 후보나 공약을 얼마큼 지지하는지를 드러내는 여론조사가 아니다. 학교모의선거는 교육목적의 모의선거교육활동이지 교육목적의 여론조사가 아니다. 선관위는 시작부터 틀렸다.

둘째, 학교모의선거를 굳이 교육목적의 여론조사로 본 이유는 그래야만 사후공표조건을 붙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선거법은 선거일 전 1주일을 이른바 ‘깜깜이’ 선거운동기간으로 설정하고 여론조사결과 공표를 금지한다. 선관위는 학교모의선거교육에도 이 조항을 원용해서 모의투표결과의 사전공개를 금지한다. 이것도 잘못이다. 유권자여론조사결과 공개를 선거직전 1주일간 금지하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대세투표성향이나 전략투표성향을 막고 주체적 투표권 행사를 조장하기 위해서다.

한번 생각해보라. 18세 이상 일반 유권자들이 초중고 학생의 모의투표결과, 그것도 특정학교의 투표결과에, 무슨 영향을 받는다고 학교별 모의선거결과를 바로 공표하지 못하게 막는가. 더욱이 유권자대상 선거여론조사는 선거직전 1주일만 공표를 금지하면서 왜 학교모의선거결과는 기간제한도 없이 무조건 금지하는가. 정 사전공표를 금지하려면 똑같이 직전 1주일만 공표금지기간으로 삼아야 마땅하지 않나. 그렇다면 어떤 학교에서 실제선거의 후보와 공약이 확정된 선거일 두 달 전에 선거교육과 모의투표를 실시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학생들이 투표결과를 알기 위해 두 달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단순한 가상 사례가 아니다. 다음대선은 2022년3월9일이다. 학년 초의 북새통 가운데 모의대선교육 실시는 기대난망이다. 대신 2월 초에 며칠 개학할 때는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모의대선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하다. 2월 초에 실시한 학교모의선거 결과를 3월9일 투표시간이 종료한 후 발표하라는 건 너무 김 빠지는 일이다. 둘 중에 하나다. 선거여론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사전공표금지요건을 폐기하거나 다른 선거여론조사처럼 결과공표금지기간을 직전 일주일로 제한하면 된다.

선관위는 정당가입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정당법개정의견도 제출했다. 현재 정당법상 정당가입요건은 선거권자로 한정돼있어 18세가 넘어야만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다. 이를 바꿔서 정당가입 최저연령을 16세로 낮춘 별도규정을 정당법에 두자는 것이 선관위 입장이다. 징검다리는 선관위입장을 지지하고 환영한다. 정당민주주의국가에서 정당가입은 국가차원의 공동선과 공익을 찾아가는 손쉬운 방편으로 가치관과 주체성이 나름 형성된 누구에게나 권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1년을 더 낮춰 15세로 정했더라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3때 맞이하는 만15세가 되면 의무교육 9년도 마무리단계인데다 가치관과 성격도 나름 형성됐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중앙선관위는 이번에도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확대를 위한 어떤 개정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에는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조항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의 추천인사가 7대2로 우세한 중앙선관위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을 위해 어떤 의견조차 내놓지 않은 것은 정치적, 헌법적 직무유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에 공식 발의했으나 제1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헌법개정안의 내용을 봐도 그렇고 21대 국회에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전부 또는 일부 회복법안이 이미 여러 개 공식 발의된 사실을 봐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4월 공식적으로 발의한 헌법개정안에 따르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중립성은 ‘직무수행 중에’ 한정된다.” 다시 말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교사가 학교바깥에서, 특히 수업 기타 교육활동시간 바깥에서, 시민의 자격으로 행하는 정치활동에는 어떤 법적 제약도 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설마하니 여소야대 국회가 지배한 집권 첫해에 그런 결의를 다졌던 문재인 대통령이 압도적인 여대야소가 만들어진 21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그런 지향을 버렸을 것 같진 않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을 권고해온 유엔과 OECD, EU, ILO 등 국제기구의 입장도 그대로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문재인 정권의 추천을 받은 선관위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마땅하다. 이번에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공식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은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21대 국회가 정치관계법을 개정할 때 대부분 관철될 게 틀림없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의 공식의견은 중앙선관위가 주무부처로 법집행을 담당하는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에 관한 한 최고의 공적 권위와 전문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선관위원들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박탈상태에 대해 제대로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이번 기회를 아무 소리 없이 넘어갔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기본권 확대요구에 대한 중앙선관위 개정의견의 침묵은 대다수 중앙선관위원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한 결함에 대해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과 문재인 정권이 대다수 중앙선관위원들을 함량미달 인물들로 채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자금법 개정의견을 내면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을 위해 어떤 전문의견도 내놓지 못한 사실은 청와대의 인사실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 할 것이다.

정치기본권을 요구하거나 허용할 때 전부 아니면 전무일 필요는 없다. 그 사이에 무수한 길이 나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문제의식과 방향이 뚜렷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점진적, 누적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면 된다. 이미 21대 국회 들어서 공무원과 교사에게 경선투표를 보장하는 입법안과 정치후원금을 허용하는 입법안, 사표내지 않고 교육감 후보로 출마할 교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안 등 공무원교사의 정치기본권 일부 허용법안들이 제출된 상태다. 중앙선관위도 이런 법안의 존재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알고 검토했을 것이다.

중앙선관위의 침묵은 중앙선관위가 스스로의 위상과 권위를 위헌제소와 개폐권고를 거듭해온 피해당사자집단 및 국내외인권기구의 손을 들어주는 데 쓸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명색이 정치관계법을 관장하는 헌법기관 아닌가. 그렇다면 오랫동안 위헌논란, 특히 과잉침해논란이 끊이지 않는 정치기본권 박탈법제를 어떻게 정상화할지를 놓고 숙고를 거듭해서 전략로드맵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 따라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청취하며 이견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볼 때 중앙선관위가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내면서 공무원교사의 정치기본권 관련해서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으로 중앙선관위의 개정의견 중 징검다리의 전략업무와 관련된 사항을 간단히 살펴봤다. 문재인 정권 추천인사가 7대2로 우세한 헌법재판소에서 공무원교사의 정치기본권 박탈법제가 6대3 합헌판정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정권 추천인사가 7대2로 우세한 중앙선관위에서도 공무원교사의 정치기본권 박탈법제에 아무런 충격을 가하지 못했다. 그나마 정당가입연령을 16세로 낮추자는 개정의견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학교모의선거교육 허용방침은 지난총선 직전의 금지해석을 명시적으로 번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의선거교육의 본질을 민주시민교육이 아니라 사전여론조사로 오판함으로써 몇 가지 문제를 남겼다. 이래저래 개운하지 않다. 정치관계법의 다른 개정의견수준도 그 수준이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