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90도 인사와 배심원석 — 재벌 왕국과 시민 사법 사이에서 | 곽노현

징검다리 시민정치학교 5강.
시민의 사법주권 회수: 중대사건에 대한 기소배심제와 배심재판 의무화

(인공지능 요약)

대통령이 재벌 총수에게 90도로 절하던 날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장면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대통령이 삼성과 SK 총수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삼성이 2655조, SK가 2100조, 합쳐서 4755조를 10년 동안 수도권과 서남권에 투자한다는 발표였다. 1년으로 치면 475조,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거의 반에 육박하는 돈을 두 재벌이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두 기업이 1년에 400조씩 쌓고 있고, 이 호황이 5년에서 10년은 갈 것이라는 전망 위에서 나온 발표였다. 대체 불가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앞에 붙었다.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다들 환호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며 깊은 사색에 빠졌다. 재벌 개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이 장면이 굉장히 불편했다. 10년 후 우리는 틀림없이 초격차 대한민국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초격차 삼성 SK 왕국, 대체 불가 삼성 SK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2점 몇 퍼센트로 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구조

이재용은 2점 몇 퍼센트의 지분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최태원은 0.5%도 안 되는 지분으로 SK그룹을 쥐락펴락한다. 이러니 재벌 총수의 이익과 그룹 전체의 이익은 완전히 다르다. 3%만 같고 97%는 다르다. 계열사에 빨대만 꽂으면 다 자기 것이 되는 구조, 나는 이것을 빨대 꽂기 특권이라고 부른다. 계열사 간 거래도 총수가 자기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같은 일이 그런 예다. 이 구조가 이번 투자 발표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재벌이 누리는 정치적 영향력도 어마막지하다. 재벌 총수는 사실상 100만 표 이상을 가진 것과 같다. 웬만한 입법과 정책을 비토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 파업이라도 한다 그러면 다들 겁을 먹고 말을 안 들을 수가 없다. 정치 권력도, 소유와 지배의 괴리 구조도, 자기 대리 특권을 통한 사익 편취 구조도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두 총수에게 국민 영웅이라며 90도로 절을 했다. 그 순간 재벌 개혁이 날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아간 것은 재벌 개혁만이 아니다

재벌 개혁이 날아가면 여러 가지가 함께 날아간다. 재벌 개혁을 지렛대로 삼을 때만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하다. 노는 임금 인상주의에 빠져 있고, 사는 지배구조 문제를 잔뜩 안고 있고, 정부는 그동안 사쪽 편을 많이 들어왔다. 이것을 풀어낼 노사정 대타협이 이재명 정부에서는 가능할 것이라 많이 기대했다. 그런데 10년 투자를 받은 것이 고마워서 감지덕지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에게 그렇게 허리를 꺾은 장면은 그동안 없었다. 이 장면이 연출됨으로써 재벌 개혁을 지렛대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도 당분간은 말도 꺼낼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내준 것도 어마막지하다. 20만 톤이면 될 용수를 65만 톤으로 늘려줘야 한다. 전기도 몇 기가를 대줘야 한다. 인허가를 다 신속하게 해줘야 하고, 규제 합리화도 최고 속도로 해줘야 한다. 용지도 만들어 줘야 한다. 며칠 전에는 광주 군 공항 부지를 반도체 팹 부지로 내주기로 했다. 이재명 특유의 속도감으로 애인이 변심할까 봐 못을 박듯이 빠르게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인프라 지원은 최소 수백 조 어치다. 공짜로 해주는 것이다. 이만큼 해주면 우리가 뭔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가 밀어줘서 만든 기업, 그런데 조건이 없다

결과는 무엇인가. 양대 재벌의 덩치가 다른 재벌과는 차원이 다르게 커진다. 물론 두 슈퍼 우량 기업을 갖고 있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걸 그냥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것과, 투자는 고맙지만 10년 후 우리 사회 경제 모습이 어떻게 될지 우려하며 조건을 붙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태도다. 재벌 집중도는 더 강해지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지금도 1년에 400조씩 버는 돈은 다 그 기업 것, 그 주주들 것이라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다.
그런데 사실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초대형 기업은 국가가 지독하게 밀어줘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가의 금융 지원과 재정 지원, 인프라 투자 없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기업은 하나도 없다. 700만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녹아나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손바닥만 뜯고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지원을 해줄 때는 반드시 조건을 붙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조건 하나 붙이지 않고 그냥 좋아서 고마워서 감지덕지하는 태도만 보였다.
경영권을 세습하며 세금 한 푼 안 내고 틈만 나면 나쁜 짓도 했던 재벌 총수들이, 젠슨 황이 다녀가고 치맥까지 함께 한 뒤로 갑자기 아이돌이 됐다. 거의 BTS급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방적인 미화는 부당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나라가 잘되는 길인 것은 맞지만, 그만큼 걱정도 많이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지난 강의 요약 — 갈라파고스적 사법부의 5대 문제

지난 시간에 우리나라 사법을 갈라파고스적 사법이라고 불렀다. 진화가 멈춘 고립된 섬 같다는 뜻이다. 다섯 가지 문제를 짚었다.
첫째, 제왕적 대법원장이다. 대법원장이 전국 모든 법관의 인사권, 승진권, 전보권을 한 손에 쥐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조다.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근본 원인이다. 법관이 대법원장 눈치를 보나 대통령 눈치를 보나 다를 게 없다.
둘째, 판사 수가 너무 적다. 유럽 미디언 값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하급심 법원의 판사 수를 최소 두 배로 늘려야 한다. 그런데 대법관 증원부터 덜컥 손댔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성향을 따라가게 돼 있고, 3년에 걸쳐 증원되면서 정치적 편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 시민의 사법 참여가 전무하다. 배심제도, 참심제도, 치안판사 제도 어느 것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넷째, 전관 비리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원장 출신들이 퇴임하면 로펌이 대문짝만한 영입 광고를 낸다. 자신의 전관 경력을 시장에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대법원에 올라가는 사건의 70%가 심리불속행으로 처리되는데,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쓰면 심리불속행을 당하지 않을 확률이 6배 높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전 세계가 부끄러워할 일이다. 검사도 마찬가지다. 검사는 수사권, 기소권, 형 집행정지권, 특사경 지휘권까지 판사 이전의 모든 결정권을 갖고 있다. 판검사 모두 전관 비리를 지독할 정도로 틀어막아야 한다.
다섯째, 사법 민주화다. 법원 접근권이 부족하다. 인구 10만 이상 도시에도 법원이 없는 곳이 여럿이다. 집단 소송, 공익 소송 같은 선진 사법 제도가 필요하다. 공익은 크지만 개개인의 이익은 n분의 1로 나뉘어 작을 때, 개인은 소송할 유인이 없다. 클래스 액션 같은 집단 소송권을 줘야 한다. 주주가 회사 경영진의 비리를 감시하려 해도 실제로 소송을 걸 만큼의 지분을 가지려면 만 분의 1도 어마어마한 주식 수가 필요하다. 이런 제소권을 넓혀야 공익 실현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시민의 사법 참여 — 배심제의 역사와 딜레마

오늘은 시민의 사법 참여를 좀 더 깊이 얘기하려 한다. 미국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1789년 연방 헌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권리장전이 붙는데, 그중 하나가 배심 재판을 받을 권리다. 러시아도 농노 해방과 함께 1870년대에 미국식 배심 재판을 도입했다. 배심 재판은 그만큼 근대 시민 사법의 상징적 제도다.
우리나라도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배심 재판을 도입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권고적 효력밖에 없다. 배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도 검찰이 항소할 수 있다. 그러니 진짜 미국식 배심 재판이 아니다. 우리나라 법률가들은 헌법에 명시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매우 협소하게 해석해서, 배심원단에 구속력을 주면 이것이 법관에 의한 재판이 아니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그래서 배심 평결에 구속력을 주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사법부와 헌법학자들의 입장이다.
그 결과 정작 시민의 상식적 판단으로 치죄하고 싶은 사건들은 신청주의로 빠져나가고, 무죄 판결이 나와도 구속력이 없어 검찰의 재기소가 가능한 구조가 됐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진짜 시민 사법이 된다.

필수적 배심 — 다섯 가지 범주를 제안한다

모든 재판에 배심을 붙이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상징적이고 중대한 사건 다섯 범주에 한해 필수적 배심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무죄를 다투는 중대한 사건이다. 형량 징역 1년 이상 등 일정 기준을 넘는 사건 중 유무죄를 다투는 경우다.
둘째,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이다. 명예훼손죄, 허위사실 유포죄, 국가보안법의 찬양 고무 선동죄 등이다. 이런 사건들은 공동체 시민의 상식적 판단이 특히 중요하다.
셋째, 권력층의 독직 비리 사건이다. 뇌물죄, 정치자금법 위반, 직권남용, 사후수뢰죄 등이다. 이런 사건은 대개 뇌물을 왼쪽 손으로 받았는지 오른쪽 손으로 받았는지를 놓고 다투는 식의 기술적 무죄 주장이 많다. 시민의 상식이 필요하다.
넷째, 대기업 관련 중대 범죄다. 환경범죄, 중대재해범죄, 중대산재범죄, 소비자 사기, 금융사기 등 피해자가 다수이고 심각한 사건들이다.
다섯째, 판검사의 법 왜곡죄다. 법을 왜곡했는지 여부는 얼핏 법률 문제로 보이지만 상당 부분 사실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을 판검사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법 왜곡죄가 입법된 마당이라면 시민의 배심 판단을 받게 하는 것이 옳다.
이 다섯 가지 범주에서 시민이 사법주권을 행사하게 되면, 가장 중대한 사건에서 사법주권이 관철됨으로써 사실상 사법 전체에서 사법주권이 살아 있다고 볼 여지가 생긴다.

참심제 —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는 전문가를

배심제와 참심제는 다르다. 배심은 사실 판정만 하고, 참심은 법리 해석에도 함께 참여한다. 배심은 보통 7명에서 12명, 참심은 보통 2~3명이다. 배심은 이해관계 없는 일반 시민이면 되지만, 참심은 원칙적으로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는 참심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사 사건, 노동 사건, 가사 사건, 의료 사건, 특허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판사는 어려서부터 시험공부만 해서 판사가 된 사람들이다. 법리는 알아도 세상 물정은 모른다. 나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공익위원으로 3년간 일주일에 3건씩 참심 역할을 했다. 민주노총 추천 위원 중 전국 1위의 노동자 승소율을 기록했다. 95% 이상이었다. 다른 위원들은 20~30% 수준이었다. 전문성과 현장 감각이 판단의 질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을 그때 절감했다.
지금은 모든 재판이 법관 중심주의다. 법관만 재판을 한다. 그런데 이런 전문 분야에는 과감하게 참심을 2명씩 붙이는 것이 낫다. 판사가 알 수 없는 세상 일에 빠삭한 전문가들의 눈이 필요하다.

필수적 배심,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내 생각의 독특한 지점은 필수적 배심이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건에 배심을 붙이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아주 상징적이고 중대한 사건들, 다섯 범주로 묶어서 그 사건들에는 필수적으로 배심을 적용해야 한다. 강도살인 사건보다는 조금 많겠지만 아주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사건에서 시민이 사법주권을 행사하게 되면, 사법 전체에 걸쳐 사법주권이 살아 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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