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교육 — 전인 교육의 조건 | 곽노현

과거에는 전인 교육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가치였지만 말로만 외치고 실제로는 지식 교육만 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에는 진짜 전인 교육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영어와 수학부터 완전히 새롭게 접근해야 입시와 대학 서열을 바꿀 수 있고,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거에서 시작해 교육까지, 사람을 바꾸는 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길이다.

1. 진실을 다루는 네 개의 기관

오늘 주제는 교육이다. 왜 중요한가. 인공지능 시대에 학문과 교육은 무지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 논리 지능과 수리 지능은 이제 인공지능에게 맡겨야 한다. 사람은 흙을 만지고 몸을 쓰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삼종 혼합 민주정이 잘 작동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회에 진실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신뢰가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고, 신뢰는 진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4대 기관이 있다. 첫째는 대학이다. 복잡다단한 진실, 단순하지 않은 사회관계의 진실을 체계적이고 비판적으로 파헤치는 곳이다. 둘째는 언론이다. 대학에서 축적되거나 여전히 논쟁적인 진실을 확산시키고, 특히 기득권과 권력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탐사 보도로 파헤친다. 셋째는 사법부다. 악의 진실을 다룬다. 악이 규명돼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공권력에 대한 신뢰의 출발이다. 넷째는 종교다. 근원적 진실, 인간과 사회에 비치는 빛을 다룬다.

훌륭한 사회는 이 네 기관이 부패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하는 사회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 네 가지에 대한 신뢰가 다 흔들린다는 데 있다. 대학은 상업화됐고, 사법은 정치화됐고, 언론은 기득권에 복무하고, 종교는 영혼을 잃었다. 진실 추구가 약하면 정의 추구도 안 된다. 모든 정의는 진실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교육을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학문과 교육 — 지덕체에서 덕체지로

학문은 대학에서, 교육은 초중고에서 한다. 대학은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를 하고, 초중고는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철학과 윤리, 덕성을 함양한다. 간단히 말하면 인성과 사회성과 시민성이다.

학력이나 성적은 부차적이다. 성적 1등은 한 명뿐이지만 인성과 사회성과 시민성은 누구나 갖출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갖춰지면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이 생긴다. 국영수를 배운다고 창의성이 생기지 않는다. 가족과 이웃과 지역과 나라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지적 호기심과 성실성, 진선미에 대한 충성심을 가질 때 길이 열린다.

3. 4차 산업혁명이 만든 괴물 — 블랙박스가 된 인공지능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력을 줄여줬다. 농업혁명의 가축화, 전기혁명의 기계화, 정보통신혁명의 자동화.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 와서 인간은 드디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발명했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 알았는데, 지금은 개발자들도 모른다. 블랙박스가 됐다. 이것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인공지능은 금융, 군사 안보, 무역 통상처럼 가장 복잡한 분야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기술 유토피아가 온다고 하지만, 기술 독재와 기술 전체주의가 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이미 기후위기만 봐도 그렇다. 전 인류가 합의했던 1.5도 마지노선이 며칠 전 공식적으로 지났다고 선언됐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아이들을 길러내야 새로운 생태 감수성과 삶의 양식으로 재앙의 폭을 줄일 수 있을지, 엄청난 챌린지가 교육에 주어져 있다.

4. 에이전트 AI와 함께 산 두 달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능은 10가지 정도로 나뉘는데, 여태까지 학교가 제일 쳐준 것은 언어 지능과 논리 지능, 그리고 그 일부인 수리 지능이었다. 국영수가 도구 학문이라 불린 이유다. 이 도구를 귀신같이 다루는 존재를 인류는 결국 발명해냈다. 생성형을 넘어 에이전트형까지 왔다. 에이전트란 권한을 위임받아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행위 주체라는 뜻이다. 이제는 하나가 아니라 10개, 20개의 에이전트를 한꺼번에 부릴 수 있다. 처리 용량이 30배, 100배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작년 6월부터 인공지능을 썼다. 처음 1년은 제미나이를 썼는데 산출량이 너무 짧아 재미를 못 봤다. 그러다 클로드를 만났다. 나는 그동안 쓴 발표 원고가 1100개가 넘고, 강의 하나마다 최소 원고지 500매를 썼다. 미발표 원고도 30개쯤 있다. 이 방대한 자료를 인공지능에게 100개 넘게 한꺼번에 집어넣으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요지를 뽑아내고 어디에 무엇을 붙이면 좋을지 안다. 보통 열 수 번, 많으면 서른 번까지 A4 한 장 분량으로 지시어를 쓰면서 작업한다. 그 결과는 전부 내 주장이고 내 논지다. 물어보면 인공지능도 그렇게 답한다. 자기는 조교라고.

5. 가짜는 어떻게 판별하는가 — 구두 면접의 시대

지금 신문 잡지사 심사위원들이 죽을 지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신춘문예 응모작이 10배로 늘었다. 인공지능이 쓴 것이다. 그러면 이제 누가 실력 있는 사람인가. 첫째는 잘 쓰는 능력, 둘째는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의 답변은 다 그럴듯하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거기서 끝난다. 검증 능력은 배경 지식의 함수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한두 번 물어보고 끝난다. 나처럼 서른 번까지 캐묻는 사람은 드물다. 40년 가까운 이론과 실천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가짜를 판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구두 면접을 하면 된다. 원고지 100매를 5분 만에 만들어낸 사람에게 핵심 부분을 물어보면 금방 들통난다. 방법론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결론을 얻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캐물으면 열 번도 안 가서 들통난다. 찬반 논거를 1초 만에 불러오는 건 쉽지만, 그걸 체화해서 즉석에서 방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6. 오래된 미래 — 전인 교육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나는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 ‘알파고 시대의 수학 교육’이라는 글을 썼고, 파파고가 나왔을 때 ‘파파고 시대의 영어 교육’이라는 글을 썼다. 거기서 이렇게 썼다. 인공지능 시대는 전인 교육을 가능하게 하고 요구한다고. 지금까지 전인 교육, 즉 지덕체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지식 교육만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표준화된 교육과정으로 30명, 100명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제일 쌌기 때문이다. 1대1 맞춤형 교육이 효과가 제일 높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너무 비쌌다. 그래서 처진 아이는 계속 처지고, 그 격차가 누적돼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학교가 아이들을 상급 학교로 갈라내는 변별사 노릇을 한 것이다.

그런데 변별의 도구가 표준화된 객관식 시험이었다. 바로 인공지능이 제일 잘하는 일이다. 교사가 오지선다 문제를 100개 만들라고 하면 5분 안에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량은 낮아질까, 높아질까. 더 높아져야 한다. 아이들이 인공지능 답변을 들고 왔을 때 어디가 틀렸는지, 어디를 더 치고 들어가야 하는지 검증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교사에게 요구되는 제일 귀한 능력이다.

7. 영어 교육 — 폭력적인 채점 방식과의 결별

영어 교육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기초 생활 영어는 누구나 쉽게 하면 된다. 발음도 모국어 액센트로 하면 그만이다. 유엔 총회에 가보면 인도 영어, 아랍 영어, 차이니스 잉글리시, 슬라빅 액센트가 다 제각각으로 쓰인다. 쪽팔릴 이유가 없다. 오픈을 오픈이라 쓰면 맞고 오프튼이라 쓰면 틀렸다고 하는 우리 채점 방식은, 내가 유엔에서 보기에 정말 폭력적인 교육이었다.

5년 안에 동시통역기가 전문 통역사보다 나아질 것이다. 번역의 세계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을 따를 자가 없다. 한 페이지 번역을 인간이 하면 30분, 인공지능은 1초다. 그러면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 다국적 기업이나 외교 분야에 종사할 사람, 지역 연구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다른 삶의 양식을 배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사 시험마다 영어를 넣는 것은 직무 연관성을 입증하게 해서 대폭 줄여야 한다.

8. 지적 사대성 — 미국 문제를 풀고 있는 한국 학자들

언어 장벽이 무너진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의 다양한 민주적, 제도적 실험을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조사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던 비교 연구가 지금은 비용이 0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지적 사대성이다.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이 서재에 앉아 미국 책과 논문을 읽으며 미국의 문제를 연구한다. 그 문제는 미국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 학계가 달려들어 해법을 구하는 것이지, 한국에서 그걸 연구해봐야 미국에도 공헌이 안 된다. 배경 지식이 없으니 제대로 된 기여도 못 한다. 반대로 한국어 책을 읽고 한국 문제를 연구하려는 사람은 적다. 주눅 든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 주눅 든 적이 없다. 내가 가르쳐줄 게 상대보다 많다는 마인드로 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지도교수의 부품처럼 행세한다. 거기서 창조가 나올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언어화된 모든 것의 장벽이 무너진다. 그러나 언어화되지 않은 것, 아직 개념이 태어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한다. 셀프 입법 특권, 혼합 민주정, 사익 편취 특권, 빨대 특권 같은 개념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은 사회 안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타자로 남아 있다.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우리는 그로부터 소외당하고 지배당한다. 그래서 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념화되지 않은 것을 개념화하고, 남들이 질문하지 않는 것을 질문하는 것.

9. 수학은 사고다 — 수학교육학회의 비난과 영광

수학은 영어와 다르다. 수학은 인공지능의 토대다. 수학 영재가 없으면 인공지능을 쓰기만 할 뿐 개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3등이다. 미국과 중국 다음이지만 격차가 크다. 그래도 독일, 영국, 프랑스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수학 영재는 반드시 키워야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 공식을 실제로 쓰는 사람이 있는가. 수학은 원래 사고다. 공식을 암기해서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 고통의 절반, 사교육비의 절반, 부모 노후 불안정의 절반이 수학에서 온다. 고3이 되면 절반 넘는 학생이 수학 시간에 엎드려 잔다. 선행학습에 성공한 아이도 듣지 않고, 실패한 아이는 못 쫓아가서 못 듣는다. 청춘의 빛나는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도록 방치하는 게 국가인가.

필요한 것은 통계와 확률에 대한 이해다. 모든 정책 논의는 통계 위에서 이뤄진다. 통계가 가능한 것만 행정과 국가 작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고, 변수와 상수를 이해하고, 함수를 사용해 복잡한 관계를 간단히 표현할 줄 알면 된다. 이것을 나는 시민 수학이라 부른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절반은 사실 확률 통계 리터러시로 가야 한다. 더 이상은 보통 사람에게 필요 없다.

대학은 전공과 무관한 수학을 과하게 요구하지 말고, 입증 책임을 물려서 미적분이 필요하면 미적분만, 확률론이 필요하면 확률론만 요구해야 한다. 그 대신 수학 영재는 따로 키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공지능 생산국이 아니라 소비국으로 전락한다. 지금 같은 수학 교육은 폐지돼야 한다. 내가 이 주장을 담은 ‘알파고 시대의 수학 교육’이라는 글을 썼을 때 수학교육학회에서 무지하게 비난을 받았다.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미친 사람이라는 평가였다. 나는 그 비난을 영광으로 여긴다.

10. 몸을 쓰는 교육 — 텃밭과 목공이 정직한 이유

영어 수학에서 남는 시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몸 쓰는 일을 시켜야 한다. 텃밭과 목공이다. 이것들은 정직하다. 가짜가 없다. 목공을 잘못하면 즉각 손을 벤다. 인공지능 결과물은 가짜인지 판별이 어렵지만, 몸을 쓰는 일은 즉각 판별된다. 텃밭은 물 주고 돌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시들면 왜 시들었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몸을 쓰는 경험 없이는 노동의 존엄도 생기지 않는다.

로봇이 10년 안에 힘든 3D 업무를 거의 다 대체할 것이다. 대체되지 않는 노동은 매우 귀하게 여겨져 페이가 높아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상업적 목적과 대기업만이 통제하면, 그 혜택을 받는 소수와 바깥에 남겨진 다수 사이에 초양극화가 벌어질 수 있다.

11.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 — 책임지는 일

인공지능은 문헌과 문헌 사이의 연결을 찾아내는 데는 귀신이다. 내가 어떤 주제를 치고 있을 때 왜 그것이 튀어나왔는지 나도 설명 못 할 때가 있는데, 인공지능은 그걸 정확히 짚어낸다. 그러나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세상, 개념화를 기다리는 현실의 변화는 인공지능이 포착하지 못한다. 현장에 발을 딛고, 현실의 문제의식으로 무장하고, 현실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치가 높은 이유다. 서재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사색만 하는 암체어 필로소피는 가치가 없다. 내가 쉬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건 거리와 현장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부딪히고 껴안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제일 잘하는 또 하나는 상담이다.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늘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실제 사람과의 접촉면이 줄어든다. 애완견이 죽었을 때 감정을 시로도 써주고 음악으로도 작곡해준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아직 천분의 1도 안 쓰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절대 못하는 것이 있다. 책임지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이해관계가 없어서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다.

12. 결론 — 전인 교육의 조건이 갖춰졌다

사람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지적 호기심을 갖고, 주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 의지를 갖는 사람. 그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갖추려 애쓰는 사람. 타인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개선을 만드는 사람. 자아를 확장하면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사람. 결국 전인 교육이다.

과거에는 전인 교육의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가치였지만 말로만 외치고 실제로는 지식 교육만 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에는 진짜 전인 교육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영어와 수학부터 완전히 새롭게 접근해야 입시와 대학 서열을 바꿀 수 있고, 그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거에서 시작해 교육까지, 사람을 바꾸는 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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