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20대] 강성호
32년만의 재심. 진실을 향한 32년 여정 “빨갱이 교사” 누명을 벗다

– 진실을 향한 32년 여정, “빨갱이 교사” 누명을 벗다
– 진실을 향한 32년 여정, “빨갱이 교사” 누명을 벗다그는 1989년 초임 교사로 발령받은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학생들에게 ‘6.25는 북침이다’라고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수업시간 북한에 대해서 한 말이라고는 일본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의 백두산 금강산 사진첩(한겨레신문사)을 보여주며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여러분도 백두산에 갈 수 있겠지요”라는 정도의 발언이었습니다.
1998년 8월 당시 전교조 충북지부장이었던 도종환 의원은 이 사건을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비교육적 비인간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교사를 고발하고 교장이 교사를 고발, 법정에 세워서 수업내용을 갖고 진위여부를 다투는 사건이었습니다….체제유지를 위해서는 한 개인의 인격과 양심과 교권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치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처럼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2021년 10월 1일, 도종환 의원은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했습니다.
“…공권력이 한 교사에게 가했던 가장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3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빨갱이교사라는 낙인이 쉽게 사라지겠습니까?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가 북침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한 학생 중에는 그 수업 당일에 결석했던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의 폐해가 남아있던 80년대 말, 노태우 정권의 ‘공안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셈입니다.
그는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32년을 싸웠습니다.
“일상 속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시민이 지켜야할 책임과 일상적으로 누려야할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우리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것이 때로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도구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장치가 시민들의 권리를 억압하지 않고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민주시민교육이 교과서 속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시민적 권리와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늘 배우고 깨우치고 실천해야 합니다.”
<가톨릭프레스 인터뷰 중에서>
28세 청년은 60세 노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32년 간 시민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교사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강성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