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5월에 다시 생각해 보는 사회현안교육 / 강민정 징검다리 상임이사

일 년 열두 달 중 어느 한 달 되새겨야 할 뜻 깊은 일이 없는 달이 없지만, 특히 4월과 5월은 유난히 함께 생각해봐야 할 일들이 많은 달이다. 가까운 우리 과거의 일 중에서 오늘도 여전히 큰 의미를 갖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고, 새롭게 추가된 현재진행형 일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4.16, 4.19, 4.27, 5.18. 하나같이 역사에 커다란 변곡점이 되어 정치적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은 일들이다.

현재 학교에서는 전국 공통의 단일한 교육과정이 촘촘히 짜여있고 검정교과서제도라고는 하지만(초등의 경우에는 국정교과서로 전국 모든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마저 똑같다) 하나의 교과서 집필기준에 의해 만들어져 사실상 같은 교과서로 수업을 해야 하는 현실이라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적시되어 있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현안을 다루는 것은 ‘계기수업’이라는 별도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이런 계기수업도 주로 독도교육이나 천안함 수업 등과 같이 일방적 지침으로 내려와 정부 정책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도록 하는 일에 활용되어 왔다. 정부의 이런 계기교육 지침에 따라 전국 모든 학교 교문에 천안함 추모 플랭카드가 걸리는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던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반대로 교사들이 교육적 판단에 따라 실시하는 계기교육은 얼마 전까지 ‘학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교육부·교육청 지침으로 제한되거나 심지어 교사징계의 사유가 되기까지 해 왔다.

교육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배우도록 하는 것이라면 사실 이처럼 ‘계기교육’이라는 별도의 제도와 지침으로 교육내용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교육 근본목적에 어긋난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되고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쟁점이 되고 있는 일들은 교실과 학교에 많이 들어올수록 좋다. 물론 교육적 판단과 교육적 지도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안이나 논쟁이 되고 있는 세상의 일들이 교실에 많이 들어올수록 우리 아이들은 삶과 세상에 유능해질 수 있다.

이는 교육목적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교육학적으로도 필요한 일이며 특히 민주시민교육에서는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추상화된 이론이나 지식을 그 자체로 교육하기보다 아이들의 경험이나 일상적 문제와 연결하여 교육하는 것이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 역할이라 할 때 계기수업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공적문제에 대해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쟁점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영국 민주시민교육의 기본 원칙을 밝힌 크릭보고서(1998)에서는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이용당할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한다(보고서 3.19)’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동 보고서 2.6에서는 데이비드 하그리브스의 말을 인용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것이며, 그 유래는 무엇이며, 현재의 정치체제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보다 나은 체제로 갈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교육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시민은 도덕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 바람직한 시민은 정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도덕적 무관심을 낳기 때문이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망언으로 정치권은 물론 온 사회가 시끄러웠다. 지금의 4,50대 세대에게 6.25가 먼 과거의 일로 느껴졌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5.18 광주는 자기와 무관한 39년 전 일로 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랬던 광주 5.18이 최근의 망언논란으로 과거의 일로 끝난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구나 아직도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몇 명이나 죽었는지, 그들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나라 군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당시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39년 만에 새로운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광주는 역사적 사건이자 동시에 사회현안이다.

80년 이후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5.18 광주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일부였던 광주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준다. 광주와 같은 반 헌법적, 반 민주적 사태가 반복되지 않아야 우리 아이들도 안전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누리며 살 수 있다.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 사건이라 이를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아이들의 삶과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현재 광주 5.18은 현대사의 일부로 교과서에서 간단히 다뤄지고 있지만 사실 5월 광주만이 아니라 아이들 삶과 관련된 사회현안들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일들은 계기교육이라는 이름으로가 아니라 일상적 수업에서 수시로, 다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과 만나는 창이 너무 많고 다양해졌다. 아이들은 영화나 TV와 같은 미디어 매체는 물론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도 배우고 있다. 학교와 교실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세상의 현안들로부터 분리되거나 ‘보호’되지 않는다. 민주시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듯 이런 다양한 통로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배움이 항상 교육적으로 건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이러한 현안들을 교실 안으로 적극 들여오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 그 중요성이 커진다.

이렇게 일상적인 공식교육과정에서 사회현안이 자유롭게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의 교육과정 수립 및 운영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서울 강남의 학교나 전라도 섬에 있는 학교나 똑같은 교과서와 똑같은 교과시수로 배워야만 하는, 게다가 교과서 진도 떼기가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인식되는 교육과정 여건이 바뀌어야 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 되는 사회현안을 다룰 때 교사의 주입이나 편향적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합리적 우려가 해소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은 우리나라 민주시민교육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교육의 실질적 당사자인 교사들의 사회현안교육의 교육적 의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교사들의 문제도 있지만 보다 강력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유로 교사들의 손발을 옭아맨 교원의 정치권리 박탈 상황이 해소되어야 한다. 사회현안일수록 첨예한 논쟁이 일어나는 문제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연결된 정치적 입장 충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던 교사들은 무의식적 자기검열이 내면화되어 쟁점이 되는 사회현안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화되어 왔다. 세월호 계기교육을 하겠다는 교사들을 징계하라는 교육부 공문이 내려가던 시절이 엊그제이니 당연한 일 아닌가.

어른들과 사회는 우리 아이들이 헤엄치는 방법은 물론 물과 바다세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세상의 바다에 뛰어들도록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갈 힘도 생기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 즐길 줄도 알게 된다. 이런 일은 교과서에 갇힌 지식을 배우는 ‘진도 떼기’와 같은 교육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에서 논쟁적인 문제를 논쟁적인 방식으로 배울 수 있게 해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갈 든든한 근육을 만들어 주자. 이것은 5월 광주가 우리 교육에게 던지는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