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고비들 – 설진성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정책기획실장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설진성정책기획실장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고비들

1.   논의의 필요성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자방자치제도 도입 이후에도, 2017 촛불혁명 이후에도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민주주의적 개혁은 미온적일 뿐이었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이 제정되고 개정되는 과정에서 소위 교육과정 전문가라고 하는 학자들이 독점하였고, 그들 리그의 카르텔 안에서 전문가들은 분점적 나누어 먹기 행태로 교육과정을 종횡으로 금을 그었다. 그 결과가 배타적인 교과적 교육과정이요, 중앙집권적 교육과정이요, 요식적인 문서상 교육과정이다.

그런데 민주적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가 국내외 안팎에서, 사회 총체적으로, 미래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1세기에 대두된 국제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변혁적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i] 절박한 화두에 응답하는 길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를 형성할 민주시민을 교육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우리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진보세력으로서 교육과정 개혁 주체임을 내세우고 있다. 교육과정 개혁 주체는 구태적인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가치 지향적이어야 한다. 우리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정론에 입각한 입장에 서서 진보적 주체들 사이에서 각축하는 대안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022 개정 시기를 맞이하여 민주적 교육과정을 다루는 논의는 첫째, 민주시민교육을 교육과정에 담는 내용 영역에 관한 논의와 둘째, 교육과정 자체가 민주적으로 설계되고 결정되는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논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적 교육과정은 민주적인 거버넌스 체제 안에서만 배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교육과정 안팎에 불거진 갈등을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따라서 다음에 나오는 고비들은 깊은 관련성을 갖는 것도 있는 만큼만이나 어느 정도 독립적 성격도 갖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다양한 병렬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수렴하는 인식적 노력 없이 제시하고자 한다. 다소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나 독자들께서 고비들 사이의 관련성을 연결해 주시기 바란다.

2.   민주시민교육의 정체성 혼란

#   주체를 배제하는 중립성의 극복

교실에서 사회적 현안을 다루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중립성은 교사와 학생 주체를 사회에서 배제하는 역효과를 갖는다. 민주시민성을 키울 곳이 학교라는 점에서 누구보다도 학생은 사회의 현안에 관심을 갖고 시민성을 키워야 한다.

그러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는 사회의 변화에 무관심하거나 혐오하는 태도를 갖게 되면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키울 수 없다. 중립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이번에는 반드시 교사가 학생의 민주시민성을 촉진할 수 있도록 중립성을 개념화해야 한다.

#   참여적 중립성으로 민주시민교육 정립

교사가 사회적 현안을 수업에서 중립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교사의 의견을 강압하지 않고, 논쟁적인 사안들은 수업 현장에서도 논쟁적인 면을 드러내며, 학생들의 입장을 인정해 주고 사회 안에서 표현할 마당을 제공하는 중립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좋은 사례로 보이텔스 바흐 합의를 들 수 있다. 독일의 정치교육에서 좌우 정치교육 진영이 합의한 보이텔스 바흐 합의에 따라 교사가 중립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참여적 중립성으로 새롭게 중립성을 정의할 수 있다. 보이텔스 바흐 합의는 교사가 배제적인 중립성을 극복하고 참여적 중립성을 발휘하며 학생의 민주시민성을 육성할 수 있는 대안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총론에서도 분명하게 교사가 참여적 중립성을 발휘하며 민주시민교육을 지도할 수 있도록 규정할 뿐만 아니라, 초중등교육법에서도 참여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조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입법활동은 헌법 제31조 4항을 구체화하는 명분도 갖고 있다.

3.   민주시민교육의 안착

민주시민교육을 교육과정에 담는 시도는 우리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경주하고 있는 핵심적인 영역이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단위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이나 시도교육청 수준 교육과정에서 일정 정도 법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어떻게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할 것인가?

두 가지 모형이 가능하다. 첫째, 범교과교육처럼 교육과정 총론에서 민주시민교육의 대강을 제시하고 각 교과교육과정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을 『거푸집 모형』이라고 모형화 할 수 있다. 둘째, 각 교과의 교육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모형을 『포크(Fork)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  거푸집 모형

거푸집 모형은 총론에서 민주시민교육의 거푸집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총론에서 민주시민교육의 목적, 방법, 평가 등을 규정하고 각 교과교육과정은 자율적으로 구체적인 민주시민교육 방법을 설계하는 형태이다. 마치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칼을 만드는 것처럼 총론은 거푸집이 되어 대강의 형태를 주조하고, 각론은 마치 녹아들어간 쇳물처럼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인 모습을 자율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방법이기는 하나 총론과 각론이 서로 호응하지 못하는 교육과정의 분절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거푸집 모형은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커푸집 모형

#   포크(Fork) 모형

포크(Fork) 모형은 총론 뿐만 아니라 각론에서도 구체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포크의 발은 각 교과 교육과정의 깊숙이 박혀서 교과교육 목표, 성취기준, 내용체계, 교수학습 방법, 평가 등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규정하는 것이다. 특히 각 교과 교육과정에서 성취기준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각 교과 교육과정의 민주시민교육을 보장하는 성취기준들을 제시할 필요가 커진다.

포크(Fork)모형

n   민주시민교육 성취기준 제시

반드시 각 교과교육과정의 성취기준 속에 민주시민교육의 요소가 반영되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성취기준은 각 교과의 내용과 내적 논리들을 민주시민교육의 가치 인식 틀에 비추어 보는 기능을 포함하면 된다.

현재 시민사회가 공유하는 민주시민교육의 가치에는 인권, 평화, 다문화, 참정권, 생태, 통일 등을 나열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규정하는 성취기준은 각 교과 교육과정의 지식과 개념 및 논리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사유하고 판단하는 기회를 진술하여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성취기준은 학생들이 각 교과의 지식과 개념을 민주 사회의 가치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기회를 준다.

예를 들어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사회문제 탐구” 교과의 교육과정은 민주시민교육의 가치 인식 틀을 어떻게 적용하여 성취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과학과에서 민주시민교육 성취기준을 한 가지 제시해 보겠다. 뉴턴의 역학이론은 현재에도 고전역학의 토대가 된다. 과학과의 만유인력이 대표하는 낙관론적 실증주의가 어떻게 근대 시민의 마음에 결정론적 사고를 싹 틔웠고, 현대 시민은 생태전환적 관점에서 그 결정론적 사고를 극복하고 있는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간단하게 성취기준으로 제시하면, “뉴턴의 고전역학에 담긴 낙관적 실증주의를 현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이해해 본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의 지식과 개념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생태적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파악하는 성취기준을 제시해 보았다.

다음은 민주시민교육 성취기준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사회문제 탐구” 교과의 목표를 제시한다. 민주시민교육은 학생들이 습득하는 지식과 개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지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 “사회문제 탐구” 교과를 참조하여 민주시민교육의 성취기준을 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사회 현상으로서 사회문제의 의미와 특징을 이해하며,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특징을 비교할 수 있다.

○ 실생활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찾아보고, 이에 대한 탐구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 사회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 및 자료를 수집·분석하며 이를 적용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정보 활용 능력, 문제 해결력, 의사 결정 능력, 비판적 사고력 등을 기른다.

○ 사회문제를 공동으로 탐구하고, 그 과정을 보고서로 발표함으로써 문제 해결력과 의사소통 능력 및 반성적 글쓰기 능력을 함양한다.

○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의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를 가진다.

○ 사회문제 탐구 및 해결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과학 계열 관련 진로를 탐색해보는 기회를 갖는다.

4.   총론과 각론의 연결성

OECD의 『교육 2030』에 참여하여 연구한 교육과정평가원의 한 보고서[ii]는 그동안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중심교육과정을 표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각 교과 교육과정은 핵심 및 교과역량을 다루는 성취기준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교육과정 전문가 집단들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사기극을 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과문한 탓일까? 학교 현장에서 각 교과의 성취기준 외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현재 총론과 각론은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 사이의 거리처럼 유리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첫째, 각 교과교육과정 전문가들이 수업 시간 수를 확보하기 위한 혹은 각 하부 영역들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만 매몰되었지 정작 교육 본연의 목적을 등한시 한 결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2012년에 주5일제 수업제도가 전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교과 교육과정 전문가들이 자기들 시수를 확보하려 경쟁하다 보니 적정한 시수 감축을 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초등 교육과정은 안전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줄어들기는커녕 60시간이 넘게 늘어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iii] 이러한 문제가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인가?

둘째, 시민들이 참여하지 못한 결과이다. 교육과정심의회처럼 법적 의사결정기구에서 교사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은 배제되었고, 소위 교육과정 전문가라 일컬어지는 그들의 입맛대로 각론을 각색하였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였다.

총론과 각론이 호응하여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교과가 구체적으로 달성해야 할 성취기준들에 민주시민교육 요소가 구체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민주시민교육의 성취기준을 각론에서 강제하게 되면 총론과 각론이 유리되는 문제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교과서를 제작하는 단계에서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을 반영하는 교과서를 제작할 수 있다. 현재 현장 교사들은 교과서에 상당 부분 의존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주시민교육의 성취기준 제시는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

5.   법적 강제 교육의 극복

교육과정을 왜곡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바로 교육 외부에서 수시로 강제하고 있는 법들이다. 보건, 정보보호, 학교폭력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보호하거나 진흥하기 위하여 학교에 부과하는 수많은 의무사항들이 교육과정을 왜곡시킨다. 교사들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규정하는 수업 따로, 교육법 외적으로 규정하는 수업 따로 운영하게 되는 어려움을 갖는다.

법률로 강제하고 있는 수업 시수에 대하여 교육영향평가를 해서 과감히 줄일 것은 줄여 나가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영향평가를 할 수 있는 주체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적합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누가 맡는다고 할지라도 교육과정의 일관성과 항상성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완책은 교육과정 변혁에 대한 현장 교원의 호감을 높일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장 교원들은 교육과정으로 규정되지 않으면서도 수시로 학교의 교육과정을 결정해 버리는 법적 강제 교육에 대하여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원칙적인 보완책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일선 학교에 요구하기에 앞서 교육영향평가를 거치게 되면 교육과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효과를 가진다.

6.   자율성과 분권화 담론

#   상시적 거버넌스 구조

민주시민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변화는 교육과정 문서의 것에 국한하면 안 된다. 교육부와 교육청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학교가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개정한 교육과정을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상시적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교육과정심의위원회만이 법적인 기관이지만 교육과정과 관련된 각 주체와 결합하는 시민위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위원들이 각 단위의 교육과정 운영에 참여하여 민주적 교육과정이 실현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미쳐야 할 것이다.

#   핵심은 학교의 자율성

현재 교육부가 전권을 휘두르는 하향식 관료체제 패러다임 안에서 시도교육청이 자율성을 확대하는 현상에 대하여 일선 교사들은 또 하나의 시어머니가 생기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제의 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감의 목표는 학교의 교육내용을 제공하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공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학교가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자율성처럼 시도교육청 주체의 자율성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혁신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독점적인 교육과정 패러다임이지 학교가 독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서 자율권을 추구하듯 학생이 주도성을 발휘하여 형성하는 교육과정을 인정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도교육청 자율화를 포함하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시도교육청 수준의 교육과정은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성격을 가져야 한다. 수직적인 거버넌스가 작동하여야 한다. 시도교육청이 의사결정 하는 과정에서 학교 교원과 학생, 보호자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발휘되는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7.   고교학점제 안착

#   시장 신자유주의 산물인가, 민주성의 확대인가?

고교학점제가 신자유주의인지 아닌지는 학생의 선택권과 함께 동반하는 전제조건들을 살펴야 한다. 일단 교육부의 고교학점제에 대한 2021년 주요 계획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진로를 살리는 교육을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고 하였으나, 그 전제가 되는 대학평준화 정책과 성취평가제 전환에는 미온적이다. 학점제로 단순히 전환한다고 해서 고교의 서열경쟁을 완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교육부는 너무 안일하게 고교학점제를 설계하고 있다. 또한 매우 지연된 성취평가제로 인하여 사교육 시장은 학점 대비, 내신 대비, 수능 대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학교 현장을 잠식할 것이다. 이와 비례하는 속도와 무게로 고등학교 교육은 황폐화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핀란드 등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모두 절대평가제를 운영하여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고 있다.[iv]

학생들이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소질을 개발한다는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평준화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대학 서열의 근본 원인은 사회가 가진 빈부격차, 소득격차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축을 병행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높은 소득격차를 직시하게 되면 절대 다양한 진로와 직업 교육을 말할 수 없다. 다양한 진로와 직업을 학생이 선택하려면 각 분야의 진로와 직업이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사회에서 인정하는 가치와 소득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결국 대학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노력은 격차사회를 고치려는 분배구조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대학평준화 정책과 성취평가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해야만 공교육의 민주성이 확보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   학점 선택의 비중은 얼마나 해야 하는가?

얼마의 비중을 학점 선택 영역에 두어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세 가지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고등학교 진학률이 72.5%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렇게 높은 진학률은 고등학교 교육 안에 보편성을 크게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보편성을 가장 쉽게 달성하는 방법은 공통 교과를 가르치는 것이다.

둘째, 고교학점제가 이루어지는 해외 여러 나라의 고등학교는 상당히 많은 학점을 보통교육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전체 학점 대비 선택 학점이 약 28%, 캐나다는 약 40%, 중국은 약 19%, 핀란드는 약 32-37%이다. 그에 비하여 대한민국 교육부가 계획하고 있는 선택학점은 약 90.6%까지 높기 때문에 자칫 고등학교 교육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셋째, 선택학점을 전면적으로 확대함에 따라 교원자격증을 갖추지 않은 임시 강사와 순회 강사를 도입하여 부족한 강사를 메꾸려고 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의 특별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임시 강사를 둘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교원자격증제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여야 할 것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교원이 학생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다양한 지도 능력을 갖춘 교원자격증자를 확대하는 것이 학생의 학습권도 보장하고 고교학점제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선택학점의 비중을 고려한다면 40%를 넘지 않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택학점의 비중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진다. 현장 교원의 재교육과 신규 교원의 확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   학생 주체성을 어떻게 담아야 할 것인가?

교육부는 학교가 기성품처럼 강좌들을 개설하고 학생은 선택하는 형태로 운영하고자 한다. 이는 일반대학들이 운영하고 있는 수강신청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평가제가 유지되고 교과내신이 대입에 반영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흥미와 적성보다는 내신점수를 챙기기 좋은 강좌에 쏠릴 부작용이 크다.

OECD 교육 2030은 학생의 변혁적 역량을 촉진하기 위하여 모든 교과수업 안에서 학생 주도의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것을 강조한다.[v] 또한 학생의 요구에 부응하여 교과를 통합하거나 창안할 필요를 강조한다. 즉, 학생의 선택과 주도성을 보장하는 것은 잡다한 교과를 개설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학생의 적성과 흥미에 맞추어 해당 학교의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선택 강좌를 개설하는 것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선택 강좌를 개설하는지에 고교학점제의 성패는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i] Secretary General of OECD (2018).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on 2030. OECD.

[ii] 이미경 외 (2018). OECD Education 2030 교육과정 내용 매핑 참여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서 RRC 2018-12.

[iii] 교육과정정보센터 (2021.6. 검색). 2015 개정 초중등교육과정 총론. [Online] http://ncic.re.kr/

[iv] 교육부 고교혁신과(2021). 포용과 성장의 고교교육 구현을 위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 교육부.

[v] OECD (2019). Student Agency for 2030. OECD.

  • 본 글은 징검다리교육공동체 공식입장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