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곽노현

시민정치학교 8강.
국민발안·국민거부·국민소환: 직접민주주의 장단점과 도입 전략

대의 권력이 게으름을 부리면 국민이 직접 입법에 나서겠다는 것, 대의 권력이 잘못하면 국민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 대의 권력이 농땡이 치면 국민이 소환하겠다는 것. 이런 긴장이 대의 권력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단속하게 만든다.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한다면, 위대한 국민이라고 입으로만 칭송할 게 아니라, 두 번의 무혈 명예혁명을 성공시킨 국민에게 평상시에도 헌법안과 법률안을 직접 발의할 힘을 쥐어줘야 한다. 

(인공지능 요약)

1. 지난 시간의 결론 — 시민의회는 국회의 상원이 아니다

지난 6주간 우리는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정의 현실을 고발했다. 선출 과두정과 시험 능력 과두정, 즉 법복 귀족정으로 구성된 엘리트 과두정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의 권력은 한 번 뽑아놓으면 4년이든 5년이든 임기 동안 주권자가 직접 통제할 방법이 없다. 선거 때 심판하고 응징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7강에서 다룬 것이 추첨에 의한 시민의회였다. 국회의원이나 거대 양당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는 헌법과 정치관계법의 제정·개정은 국회 스스로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을 추첨으로 뽑아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게 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입법 권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다만 시민의회가 국회 위의 국회, 일종의 상원이 될 수는 없다. 국회가 구속력 있는 법을 만드는 이상, 시민의회의 역할은 권고에 그쳐야 하고 국회가 이를 최대한 존중해서 입법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

2. 국민투표의 한계 — 만 명이 모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늘은 그 너머로 간다. 민주주의란 원래 권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 권력을 만들어낸 사람들, 그 권력이 만든 법에 구속당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중대한 사안을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일이니 우리가 정해야 한다. 그런데 5천만이 어떻게 모이는가. 만 명도 모일 수가 없다. 설령 만 명이 모여도 20명 정도가 단상에 나와 연설하고 나머지는 손을 들어주는 수동적 관객이 될 뿐이다. 함성과 야유 속에서 토론은 실종된다. 그래서 선거로 유능한 대표자를 뽑고 그에게 맡기자는 것이 선출 민주정의 비전이었다.

그런데 정말 중대한 사안이라면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문제는 국민이 이 사안을 충분히 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20시간 이상 학습하고 토론했어야만 투표권을 준다고 강제할 수도 없다. 시민의회는 100명, 200명이라는 적은 수를 뽑는 대신 최소 20시간 이상의 숙의 과정을 보장한다. 반면 국민투표는 국민표결, 즉 다수결이다. 한 표라도 많은 쪽이 결정한다.

국민투표는 찬반 투표나 1안, 2안 형식밖에 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의회를 보면 여야가 사사건건 반대하다가도 몇 번의 협상 끝에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합의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타협안은 처음 것보다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조정과 타협의 과정을 국민투표는 만들어낼 수 없다. 처음부터 찬반 혹은 1안, 2안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직접 민주주의를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필라델피아에서 헌법을 만든 56명, 그중에서도 제퍼슨과 매디슨 같은 가장 뛰어난 몇 사람은 한결같이 직접 민주주의, 즉 광장 민주주의와 민회 민주주의를 무지하게 위험한 것으로 봤다. 함성과 열정과 변덕으로 뭔가를 결정한다는 것, 부화뇌동하고 세뇌당하고 갈대처럼 움직이는 변덕스러운 민중이 결정한다는 것을 그들은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미국 헌법에는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미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그냥 공화국이다.

이들이 선택한 것이 선거제였다. 탁월한 사람을 뽑아서 맡기자는 것이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됐다. 초기 식민지 시절 임기는 6개월에서 1년이었다. 임기가 짧아야 응징과 심판이 의미를 갖는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연방이 만들어지면서 임기가 2년으로 늘어난다. 13개 주가 남북으로 2천 킬로미터에 걸쳐 있어서 의회 소집에 두 달씩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기 2년짜리 하원의원은 유권자 눈치를 너무 볼 것 같았다. 당시 투표권은 중산층 이상에게만 있었는데도,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표자들이 중간층과 하상층의 눈치를 보느라 포퓰리스트가 되고 재산권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상원이다. 임기 6년, 그것도 직선이 아닌 간선이었다. 일반 백성 눈치 보지 말고 오직 국가 전체의 이익, 사실상 재산권의 안정을 봐달라는 뜻이었다. 미국 상원이 직선제로 바뀐 것은 100년도 안 된 일이다.

4.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장치들

상원의 간선제로도 걱정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법원이다. 연방 판사를 종신직으로 만들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법만 바라보게 했다. 그런데 법의 토대가 무엇인가. 생명과 신체의 자유, 그리고 재산권 보장이다. 법원의 종신제, 상원의 장기 임기와 간선제, 그리고 직선이지만 사실상 임기 있는 군주와 다름없는 대통령제. 이 모든 것이 민중의 변덕과 열정으로부터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장치들이었다. 정당조차 건국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정당이 생긴 것은 건국 후 2, 30년이 지난 뒤였다.

5. 대통령의 거부권 — 견제와 균형은 지금도 작동하는가

이 구조 속에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흥미로운 계산을 만들어낸다. 의회 절반이 통과시킨 법률을 대통령 혼자 거부할 수 있으니, 대통령 1인의 정치 권력은 의회 2분의 1보다 크다. 그러나 의회 3분의 2가 재의결하면 거부권이 무력화되니, 3분의 2 권력보다는 작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정치 권력을 의회의 2분의 1 이상, 3분의 2 이하로 정식화했다.

그런데 이 균형은 정당과 당론이 생기면서 사실상 깨졌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이승만은 초대부터 6년간 여소야대였고, 57건 중 40여 건이 재의결됐다. 그때는 정당 규율이 약해서 의원들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윤석열은 3년 내내 여소야대였지만 단 한 건도 재의결되지 않았다. 정당의 당론과 공천권이라는 장치가 여당 의원들을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여소야대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법안은 사실상 그날로 부결이 확정된다. 야당이 3분의 2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견제와 균형이라고 부르기는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미국 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없었던 것들, 즉 여론조사와 위헌법률심사 제도가 지금은 있다.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은 헌법재판소가 무효화할 수 있고, 여론이라는 실시간 정치적 압력도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거부권이라는 낡은 장치를 굳이 유지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6. 발광체 없는 반사체의 거부권 — 헌법학계의 침묵

이 문제는 윤석열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한덕수와 최상목이라는 임명직 권한대행들이 거부권을 14번이나 행사했다. 나는 이것이 헌법의 abc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정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것이다. 그 발광체가 탄핵으로 빛을 잃었는데, 빛이 없는 반사체가 무슨 빛을 낼 수 있는가. 정치 권력이 없는 권한대행이 정치 권력을 전제로 하는 비상 대권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 메아리가 없었다.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이 주장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큰 회한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 헌정의 고유한 문제는 우리나라 헌법학자와 정치학자가 풀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것은 학계의 집단적 직무유기다. 자주적 문제의식을 결여한 학문 집단이 얼마나 졸렬한 것인지 깊이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7. 직접 민주주의 삼총사 — 발안, 거부, 소환

직접 민주주의의 3대 권리가 있다. 첫째는 국민 발안, 이니셔티브다.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입법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국민 거부권, 레퍼렌덤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거부권만 알고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국민의 거부권이다.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상관없이, 국회가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공포한 법률이라도 국민이 보기에 잘못됐다면, 통과된 지 100일 이내에 서명을 모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국민 소환, 리콜이다. 하자 있는 대리인을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원리는 같다. 일반 시민이 서명을 모으는 것이다.

국민 발안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개헌안 발의권과 법률안 발의권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헌법은 유신 쿠데타 이전, 제3공화국 헌법까지는 50만 명의 국민 서명으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신 쿠데타를 거치며 이 권리가 사라졌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법률안 국민 발안권만 담겼고 개헌안 발의권은 빠졌다. 나를 포함해 개헌 운동을 했던 모든 사람이 이 점 때문에 그 개헌안에 70점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독재 극복 차원에서라도 개헌안 국민 발의권은 복원했어야 했다.

8. 국회 추천 총리제라는 함정 — 계파 수장들의 셈법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개헌안 국민 발의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면 시민 정치가 너무 강해지고 정치권이 왜소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내각 책임제 개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예외 없이 국회의장 출신, 즉 20~30명의 부하 의원을 거느린 계파 수장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국회 추천 총리제다.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면 총리는 간선이지만 강력한 정치 권력을 갖게 되고, 이는 준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와 통한다. 대통령은 카리스마와 하늘이 낸 운명이 필요하지만, 총리는 계파 수장급이 돌아가며 해먹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내각 책임제를 하려면 최소한 선거법을 비례대표제로 바꿔서 다당제를 만들고, 연립 내각 중심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그대로 두고 대통령을 외교·국방으로만 묶고 내치는 국회 추천 총리가 맡는 방식은, 대통령의 권력 중 핵심인 내각 구성권만 쏙 빼서 총리에게 넘기겠다는 권력 편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내각 책임제 자체는 권력 분산 차원에서 좋은 제도다. 정확히 말하면 내각 책임제는 장관 책임제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교육부 장관이 모든 교육관계법의 책임자이고 대통령은 등장하지 않는다. 내각 책임제 나라에서는 장관이 3선 의원, 차관이 재선 의원인 경우가 흔하다. 총리는 우리 중의 으뜸일 뿐 우리 위의 상전이 아니다. 대통령제가 대통령이라는 절대 강자와 여당이 함께 움직이면서 오히려 더 권력 집중적으로 변질된 것과 대조적이다.

9. 서명 요건의 설계 — 개헌은 몇 명, 법률은 몇 명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실제로 설계한다면 구체적 요건이 중요하다. 개헌안 국민 발의는 유권자의 2%, 우리나라 기준으로 약 88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명 기간은 최소 180일. 이 정도가 되면 국회 심의 없이 바로 국민 표결로 간다. 국회는 그저 찬성이나 반대, 또는 대안을 제시해서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 뿐이다. 법률안 발의는 1%, 약 44만 명, 서명 기간은 최소 120일이다.

국민 거부권은 이보다 훨씬 낮은 문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법률 효력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국회를 통과한 모든 법률이 관보 게재 100일 후에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고, 그 100일 안에 5만 명이 서명하면 국민투표로 넘어간다. 그때까지 법률 효력은 정지된다. 우리나라라면 0.5%, 약 22만 명 정도가 적정하다고 본다. 시민의회 소집 청구는 이보다 더 낮은 0.25%, 약 11만 명이면 충분하다. 이것은 내가 3년 전 국제 심포지엄에서 직접 발제했던 내용이다. 시민의회를 국회나 대통령, 지자체장의 재량 사항으로만 두면 그들의 책임 회피용, 면피용으로 쓰인다. 그래서 시민이 직접 청구해서 강제 소집할 수 있는 권리로도 만들어야 한다.

국민 소환은 좀 더 복잡하다. 선거구 단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지난 선거 유효 투표수의 절반 정도를 기준으로 하고, 임기 첫해와 마지막 1년은 제외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실제로 주지사가 소환된 사례가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민주당 소속 데이비스 주지사를 소환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0. 우리나라의 현실 — 주민 발안은 있지만, 투표율 함정

우리나라에는 이미 주민 발안, 주민 거부, 주민 소환 제도가 지방자치 차원에는 존재한다. 다만 국회의원과 대통령, 그리고 탄핵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자에게는 없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가 대표적이다.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지 않으면 아예 개표를 못 하게 돼 있어서, 반대 측이 ‘투표 거부 운동’을 벌이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독려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투표를 막는 것이 전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문제를 대만은 다르게 풀었다. 찬성이 반대보다 한 표라도 많으면 가결이되, 그 찬성표가 전체 유권자의 25%를 넘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 5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가결이 가능해진다. 투표를 독려하지 않고는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나는 이 방식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본다.

11. 스위스가 국민 발안으로 결정한 것들 — 빛과 그림자

스위스와 미국 일부 주는 직접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스위스에서 국민 발안으로 결정된 사례들을 보면 놀랍다. 군대 완전 폐지 발안은 1989년 36% 찬성으로 부결됐다. 외국인 인구를 전체의 10%로 제한하자는 발안은 54% 반대로 부결됐다. 반면 알프스를 통과하는 화물 운송을 도로에서 철도로 전환하자는 발안은 1994년 51.9%로 가결됐고, UN 가입은 2002년 54.6%로 가결됐다.

논란이 된 사례도 있다. 이슬람 사원의 첨탑, 미나렛의 신규 건설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이 57.5% 찬성으로 가결됐고,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나 니캅 등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도 51.2%로 통과됐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국제인권법 위반, 소수자 문화권 침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면 모든 시민에게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발안은 2016년 77%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는데, 이 국민투표 자체가 전 세계 기본소득 논의에 기폭제가 됐다. 이처럼 직접 민주주의는 진보적으로도 보수적으로도 쓰일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12. 제2의 정치 공간 — 재벌과 거대 양당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곳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해도 찬반은 결국 정당 노선을 따라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걸 주도하는 것은 대개 군소 정당이나 야당이다. 통상적인 의회 정치에서는 의제화되지 않는 사안을, 국민 전체의 정치, 즉 주권자 정치로 돌려버리는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 이중화된다. 대의 권력의 정치가 있고, 그 옆에 주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제2의 정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맥락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재벌 체제가 이 공간에는 손을 대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벌은 언론을 장악해서 일반적인 여론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사안별 국민투표에서는 그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부자 감세법이든 재벌 특혜법이든, 국민이 사안별로 거부할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부자 증세법을 국민이 거부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쓰일지는 알 수 없는 양날의 검이지만, 적어도 거대 양당과 재벌의 입김이 의회 안에서보다는 훨씬 약해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숙면을 갖고 있다.

13. 단일 주제 제약 — 원포인트가 답이다

개헌 국민투표를 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개헌 때마다 5,60개 조문을 한꺼번에 묶어서 찬반을 물었다. 47개는 마음에 드는데 3개가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부결시켜야 하나, 찬성해야 하나. 이것은 결국 물타기가 된다. 예를 들어 헌법 전문에 5·18을 넣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부마항쟁까지 같이 넣는 것에는 반대할 수도 있는데, 지금 방식으로는 이런 섬세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개헌도 시민 입법도 원포인트, 혹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단일 주제로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 용어로 단일 주제 제약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부르카 착용을 처벌하는 법이라면, 실제 착용, 미수, 예비, 음모, 공모까지 함께 규정해도 하나의 주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사안을 하나로 묶어서 찬반을 강요하는 것은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이 예스인지 노인지를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14. 결론 —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대의 권력을 긴장하게 만든다

직접 민주주의도 시민의회와 마찬가지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국민 발안이든 국민 거부권이든 국민 소환이든 오남용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려는 좀 지나친 것이고, 설계를 잘하면 없앨 수 있는 것들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스위스에서 시작해 오레곤과 캘리포니아로 건너간 경로가 있다. 처음 도입됐을 때 캘리포니아가 국민 발안으로 제일 먼저 통과시킨 것이 여성 투표권법이었다. 그다음이 국회의원 임기 제한법 같은 셀프 입법 개혁이었다. 직접 민주주의는 언제나 정치 개혁의 도구로 쓰여왔다.

나는 전략적으로 시민의회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시민의회는 권고적 효력이기 때문에 법률만으로 도입할 수 있지만, 국민 발안·거부·소환은 헌법 개정 사항이라 정치권의 저항이 훨씬 크다. 가장 좋은 길은 개헌 국면에서 개헌 절차법에 시민의회를 넣고, 그 시민의회가 심의한 의제로 직접 민주주의 삼총사를 개헌 내용에 올리는 것이다. 개헌이야말로 오직 시민이 최종 투표로 마무리 짓는 유일한 법이니, 재정권자이자 개정권자인 주권자가 참여하는 통로로 시민의회만한 것이 없다.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이것이다. 대의 권력이 게으름을 부리면 국민이 직접 입법에 나서겠다는 것, 대의 권력이 잘못하면 국민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 대의 권력이 농땡이 치면 국민이 소환하겠다는 것. 이런 긴장이 대의 권력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단속하게 만든다.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한다면, 위대한 국민이라고 입으로만 칭송할 게 아니라, 두 번의 무혈 명예혁명을 성공시킨 국민에게 평상시에도 헌법안과 법률안을 직접 발의할 힘을 쥐어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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